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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묻지마 범죄, 묻지마 정치

중앙일보 2012.08.25 00:22 종합 39면 지면보기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민주당의 구태정치가 학교폭력이나 묻지마 살인 행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의 발언을 놓고 어제 정치권이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범죄 발생 책임을 바로 공당에 지우는 게 말이 안 되기도 하거니와, 굳이 연결시킨다 해도 집권여당 책임이 더 클 터이니 민주통합당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당장 이문이 남을 듯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터뜨리고 보는 게 새누리당만의 행태는 아니지만 말이다.



 상대를 흠집내기 위해서라면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는 ‘묻지마 정치’는 거의 일상화됐다. 세상 살기 싫은 나에게 이유 따위는 묻지 말고 무조건 칼을 받으라는 묻지마 범죄도 무섭지만, 우리는 무조건 옳으니 너희가 하는 일은 다 잘못됐다는 묻지마 정치의 해악은 정말 심각하다. 무슨 일이든 정해진 공식에 집어넣고 스테레오 타입으로 논평이나 성명을 내면 그만이다. 묻는 것도, 따지는 것도 거부하는 풍토에서 상식과 합리는 실종된다. 언론·학계도 정치권의 흑백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로 치면 일곱 색깔 중 중간색은 다 무시되고 빨강과 보라색만 설치고 나대는 꼴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여야는 전국에서 발생한 녹조의 원인을 놓고 드잡이를 벌였다. 여기에서도 공식은 같다. 4대 강 때문이냐 아니냐는 흑백론이다. 한때 채소값 폭등이 4대 강 탓이라 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녹조로 옮겨갔다. 여야 정당, 청와대, 국토해양부·환경부, 서울시장까지 싸움에 끼어들었다. “4대 강 사업과 관계 없는 북한강 녹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반론에 대해 “북한강에 있는 댐들이 4대 강의 보(堡)처럼 강물 흐름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재반론이 이어졌다. “그럼 보가 3개나 있는 남한강엔 왜 녹조가 안 생겼나”라는 지적에는 “상류 석회암층에서 나온 칼슘·마그네슘이 인과 결합해 침전한 덕분에 발생하지 않았다”는 그럴듯한 반박이 나왔다. 관련 토론회가 여러 차례 열렸지만 주최 측 정치 성향에 따라 상반된 주장들이 제기된다. 심지어 참석한 교수 이름만 봐도 무슨 주장을 할지 짐작되는 판이니 ‘무식한’ 일반 국민은 도대체 어떡하란 말인가. 어제 환경부의 한 공무원이 내게 한 푸념이 귀에 생생하다. “녹조는 수십 년 된 문제인데 올해 특히 ‘판’이 커졌어요. 수도 서울 한강에 녹조가 생긴 것, 그리고 4대 강 사업에 대한 정치적 논란 때문이지요.”



 때마침 내린 폭우가 도와준 덕분에 ‘녹조 라테’ 논란은 잦아들고 있다. 한강 본류의 녹조주의보는 어제 해제됐다. 그러나 충청권 주민의 식수원인 대청호는 거꾸로 녹조현상이 악화돼 어제 주의보에서 경보로 격상됐다. 이럴수록 정치권이 녹조의 진짜 주범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팔을 더 걷어붙여야 할 텐데, ‘4대 강 정치’와 다소 거리가 생긴 탓인지 벌써 흥미가 반감된 눈치다.



 20세기 전반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조지 오웰(1903~50)은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일관된 이데올로기’보다는 ‘일관된 도덕적 힘’을 더 중시했다고 한다. 오웰은 당대 영국 지식인층이 합리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먼저 정서적으로 입장을 정하고, 그 뒤에야 지적 정당화 작업에 착수한다고 보았다. 그 때문에 지식인들이 고도의 이성적 판단을 요하는 외교적·군사적 예측에서 대체로 실패하며, 1939년의 독일·소련 조약을 예견한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친러시아·반러시아파로 갈린 지식인층이 당파적 정서에 휘둘려 오로지 소련을 선하게 혹은 악하게, 강하게 혹은 약하게 만드는가 여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고세훈 지음).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국력이 역전될 즈음이던 1764년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간 조선 의원(남두민)과 일본 의원(기타야마 쇼우)이 나눈 대화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겠다. 이미 서양에서 해부학을 들여왔던 일본의 기타야마가 “우리나라 어떤 의원이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 장기 등을 자세히 살피고 책도 지었다”고 하자 남두민은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말라”고 꾸짖듯 대답한다. 혹시 합리보다 독선과 아집을 앞세우는 풍토가 오래전부터 풍미했던 것은 아닐까.



 냉혹한 권력의 세계에서 어중간한 입장을 취했다간 어느 칼에 맞는지도 모르게 당한다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대선이 채 넉 달도 남지 않은 살얼음판이다. 그래도 그렇지, 자신들도 뻔히 알면서 진영논리만 복창하는 모습은 너무 데데하다. 정치판이 계속 “모 아니면 도”만 외치면 중간의 개·걸·윷들은 어디에 마음을 두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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