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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 백’ 가고 독특한 ‘나만의 백’ 뜬다

중앙일보 2012.08.24 04:44 Week& 8면 지면보기
독특한 색상과 개성 강한 디자인으로 ‘잇백’ 트렌드를 대체하고 있는 가방들. 브루노 말리
‘잇 백(it bag)’의 시대가 저물었다. ‘꼭 가져야 하는 단 하나의 가방’이라는 뜻의 ‘잇 백’은 90년대 들어 대중화 됐다. 유명 브랜드마다 ‘올해 꼭 가져야 할 가방’임을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덕분에 누가 봐도 한눈에 아는 ‘올해의 가방’ ‘이번 시즌 가방’이 탄생했던 것이다.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해외 고가 브랜드의 몇백만원짜리 ‘잇 백’을 대체하는 흐름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가방이 인기다. 이유를 분석했다.



지난해 5월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셀리아 월든은 “‘잇 백’ 유행이 끝나서 정말 기쁘다”고 적었다. 영국 일간신문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글에서다. “여자들이 더이상 가방을 떠받들며 살고 싶어하지 않는데다 현명한 소비자들이 스스로의 개성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란 게 월든의 주장이다.



이런 경향이 국내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40만원대 가방을 구입한 직장인 이순영(37)씨는 “주변에서도 어떤 브랜드인지 쉽게 알 수 없는 독특한 가방들이 눈에 띄더라”며 “요즘은 드러내놓고 ‘나 명품백이요’하는 것보다 남과 다른 개성 있는 가방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요즘은 ‘잇백’이나 평소 눈여겨 보던 명품 브랜드 가방 보다는 숨어 있는 ‘나만의 백’을 찾게 된다”고 했다.



이씨처럼 100만원 미만 가격대의 가방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내 가방 브랜드도 약진 중이다. 패션 업체 코오롱 FnC의 ‘쿠론’이 개성 있고 독특한 디자인 가방의 선두 주자격이다 디자이너 석정혜씨가 만든 브랜드인 쿠론은 30만~80만원대로 과한 장식없는 단순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인기에 힘입어 올 상반기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잡화 브랜드 중 매출신장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쿠론 외에도 ‘빈치스벤치’ ‘말벡’ ‘브라스 파티’ ‘하비아누’ 등 국산 가방 브랜드는 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을 앞세우고 영업 중이다.



개성 넘치는 가방 디자인에선 눈에 띄는 색상이 특징이다. 로고 없이 디자인으로 승부를 하다 보니 같은 모양이라도 3~4가지 색상으로 선택의 폭을 다양화했다. 2010년 가을·겨울 상품부터 가방을 만들어 온 ‘브루노 말리’는 새 상품을 내놓을 때마다 이런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 브랜드를 전개하는 금강제화 홍보팀 이영미 대리는 “특별한 모양, 남다른 소재에다 다양한 색상을 더해 소비자 각자의 취향이 표현되도록 하기 위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잇 백’ 보다 개성 넘치는 가방이 확산한 데는 스타들의 영향도 크다. 쿠론을 비롯해 국산 브랜드 가방을 든 연예인 모습은 요즘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쿠론의 스타 마케팅을 담당하는 류주희 대리(APR에이전시)는 “스타들이 드라마 뿐만 아니라 공항 등을 오갈 때 자주 들고 나와 인기를 끌었다”며 “요즘은 스타들 쪽에서 먼저 협찬 요청이 올 정도”라고 말했다.



2 말벡 3 쿠론 4 V73 5 코치 6 빈치스벤치 [사진=각 브랜드]


해외 브랜드도 마찬가지로 번쩍 번쩍한 장식에 로고가 눈에 띄게 하기 보다 가볍고 편한 소재나 색상을 다양화한 디자인을 선뵈고 있다. 지난해 봄·여름 선보인 프랑스 디자이너 라프 시몬의 가방은 아세테이트 소재로 돼 있다. 가격은 20만원 정도였다. ‘명품백’ 하면 떠올릴 만한 커다란 로고나 번쩍이는 장식이 없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 6월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명품관인 ‘애비뉴엘’에 입점한 이탈리아 가방 브랜드 ‘V73’도 이런 예다. ‘V73’은 천 소재인 ‘캔버스백’에 가죽백 그림이 들어가 있다. 명품관 입점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30~40만원대이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개성 넘치는 가방이 명품관에도 등장한 것이다.



미국 브랜드 코치는 올 가을·겨울 신상품에 로고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가방을 대거 선보였다.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태그’에만 브랜드 이름을 찍었을 뿐 작게나마 넣던 음각 로고도 없앴다. 코치의 아시아 지역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윙 콴라이는 자사의 최근 디자인에 대해 “요즘 소비자들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가방이나,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유행’ 가방은 멀리하려 한다”며 “이런 경향은 아시아나 서구를 가릴 것 없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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