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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30대 “날 이렇게 만든 6명 생각 … 칼 다섯 자루 숫돌에 갈았다”

중앙일보 2012.08.24 01:17 종합 16면 지면보기
여의도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김모씨가 23일 오전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신용평가회사 퇴직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씨는 지난 22일 오후 여의도 렉싱턴 호텔 인근에서 전 회사 동료 조모씨 등 4명을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뉴스1]
23일 오전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원. 전날 여의도에서 칼부림 사건을 저지른 김모(30)씨가 범행 전까지 살던 곳이다. 건물 반지하에서 좁은 복도를 지나자 구석에 있는 김씨의 방이 보였다. 2평 남짓한 크기의 방은 창문이 없어 전등 없인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가방과 옷가지는 가지런했다. 책장엔 『20대가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일』 『돈 걱정 없는 노후 30년』 등 처세·재테크 관련 책이 있었다. 고시원 주인은 “월 25만원의 방세가 몇 달 밀렸지만 김씨는 착한 성격의 30대 청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의 심리적 불안함을 반영하듯 책상 서랍엔 먹다 남은 불면증 약이 있었다.


“퇴사 뒤 일 안 풀려 고시원서 홀로 지내 … 자살 생각했지만 혼자 죽긴 억울”
그가 가진 건 빚 4000만원, 현금 200원과 4000원 충전된 교통카드가 전부

 김씨는 2004년부터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냈다. 부모는 경기도 가평에서 펜션을 운영 중이지만 사이가 좋지 않아 지금까지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그는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대학을 중퇴했다. 하지만 생활비만큼은 스스로 벌었다. 2009년 10월 H신용평가사에 입사한 뒤 3개월 만에 부팀장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직장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김씨의 실적이 떨어지자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부팀장이면서 월급만 많이 받아간다” 는 등의 비난을 받았다. H사의 한 직원은 “김씨 급여의 상당 부분은 추심해결 건수로 받는 수수료라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2010년 10월 스스로 퇴사했다.



김씨의 고시원 방에 있던 불면증 치료제(위 사진). 아래는 범행 당시 김씨가 가지고 있던 돈의 전부인 현금 200원과 교통카드. [이승호·이현 기자]
 이후 김씨에겐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는 지난해 초 한 대출영업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입사 초기엔 인맥관리 사이트에 개인 프로필과 사진을 올리는 등 의욕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실적을 못 내고 몇 달 뒤 퇴사했다. 이후 일 없이 제2금융권의 대출금으로 생활했다. 높은 이자에 빚은 금세 4000만원까지 늘었다. 이로 인해 채권 추심업무를 하며 ‘빚독촉’을 했던 그는 자신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취직은 더욱 힘들어졌다. 집을 현재의 고시원으로 옮긴 김씨는 노트북까지 팔았지만 빈곤은 해결되지 않았다. 경찰에 체포될 당시에도 김씨 수중엔 현금 200원, 4000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뿐이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김씨는 자살도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1~2개월 전부턴 “내가 이렇게 된 건 나를 험담한 동료 6명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을 죽일 생각을 했다. 그는 마트에서 과도 5개를 사 숫돌에 갈아놓기까지 했다. 김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생활고에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려고 했으나 혼자 죽으려니 억울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날 김씨에 대해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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