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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도 잘 안 돼요, 그래도 신나는 산골학교

중앙일보 2012.08.21 01:07 종합 22면 지면보기
울산시 울주군 소호마을로 유학 온 초등학생들이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 소호산촌유학센터]


울산 도심에서 차로 1시간40여 분 산길을 달려 도착한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마을은 휴대전화 신호가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외딴 산골이다. 고헌산 중턱의 해발 550m쯤에 자리한 마을에 들어서자 물놀이를 즐기던 아이들 4명이 뛰어가고 있었다. 몇몇 아이는 산골 마을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유명 브랜드 샌들을 신고 있었다. 10살배기 한 아이가 “난 씻으러 간데이”라고 하자 “‘간데이’가 무슨 말이냐?”며 다른 아이가 되물었다. “말투가 왜 다르니”라고 묻자 “우린 도시 유학생이에요. 저기 보이는 유학센터를 통해 이 마을에 왔어요”라고 말했다.

유학촌으로 뜬 울산 소호마을



 ‘유학생’ 아이가 가리킨 ‘소호산촌유학센터’는 농가 주택을 사무실로 개조한 것이었다. 귀촌 9년째인 김미진(41·여)씨가 인터넷 카페에 아이들이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잘 지낸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요. 마을 아이들 대부분 부모와 떨어져 지내거든요.”



 소호마을엔 1984년 개교한 궁근정초등학교 소호분교가 있다.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도시로 나가면서 교실 4개짜리 이 분교는 2014년께 폐교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 수가 31명으로 늘어나 폐교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3명이던 교사도 증원됐다. 31명 가운데 27명은 서울·부산 등 대도시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다. 시골 학생들이 도시로 유학 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 학생들이 시골로 유학을 온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유학센터를 차린 뒤 3년 만의 변화다.



 아이들은 소호분교에서 정규 수업을 받은 뒤 각종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농기구 몰며 밭 갈기,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직접 논에서 풀을 뽑으며 즐기는 게임, 피자와 햄버거에 찌든 아이들의 입맛을 바꿔줄 메주 쑤기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들은 소호분교로 전학 온 뒤 1년 정도 부모와 떨어져 생활한 뒤 돌아간다. 주민들은 마을회관 옆 2층짜리 집을 개조해 기숙사를 꾸미고 음식 잘하기로 소문난 ‘호미댁’ 등 네 가구를 하숙집으로 지정했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은 도시와 달리 텃밭에서 가꾼 유기농 식품 위주다.



 소호마을엔 자연을 체험하러 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컴퓨터 게임에 빠졌거나 왕따 문제를 겪는 아이들도 많다. 개중에는 게임 중독에서 벗어난 아이, 좀처럼 낫지 않던 아토피가 치유된 아이들도 있다. 아이를 6개월 정도 맡겼던 부산의 한 학부모는 “늘 방 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만 빠졌던 아이가 이제 밖에 나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다닌다”고 했다. 6개월 전 서울에서 유학 온 박현수(10)군은 “처음엔 컴퓨터가 없어 힘들었는데 이제 민물고기를 찾으러 다니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유학 온 어린이들 덕분에 마을도 되살아났다. 더 이상 도시로 떠나는 주민이 없다. 오히려 아이들과 터를 잡겠다는 귀촌자가 더 들어온다. 2009년 170가구에서 올해 183가구로 마을은 커졌다. 유중기(43) 소호분교 교사는 “처음엔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이 울기도 하고 불만도 내세우지만 금세 잘 적응하는 편이다. 유학생들 때문에 마을이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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