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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누가 탈북자를 약자로 내모는가

중앙일보 2012.08.21 00:37 종합 33면 지면보기
조현숙
정치국제부문 기자
북한의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서모(42)씨. 2001년 7월 탈북한 그는 한국에 와서도 학업을 놓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지질 탐사를 공부했고 2007년 5월 전공을 살려 남북 자원개발 교류를 담당하는 정부 산하 협회에 취직했다. 1년 계약직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계약기간을 2년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1월 그는 아무런 설명 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몰라 답답합니다. 협회 일은 점점 많아지던데…. 남북 관계가 안 좋아서 그랬나, 정권이 바뀌어서 그랬나, 추측할 뿐이죠. 정부에, 국회에, 청와대에 물어봐도 답은 없습니다.”



 서씨와 같은 처지의 탈북자는 한둘이 아니다.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기는 목숨을 건 탈북만큼이나 어렵다고도 한다. 행정안전부가 발의해 2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그 같은 문제를 의식한 듯하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북한 이탈 주민과 귀화한 사람을 경력 경쟁채용 방식으로 공무원에 임용한다는 조항을 담은 게 핵심이다.



 개정안에 나온 취지는 이렇다. “대부분이 경제적 자립과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배려가 필요하다.” 여기서 배려란 취업 문호의 확대를 가리킨다. 개정안엔 또 “사회적 약자를 배려” “새로운 약자층”이란 표현도 반복돼 나온다.



 하지만 정작 탈북자들은 이런 표현을 반기지 않다.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 윤정훈 팀장은 “탈북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탈북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너무 많다”고 했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하나원이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같은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기관조차도 탈북자 취업에 인색하다고 비판한다. 2010년 탈북자 출신 계약직 직원 6명이 한꺼번에 하나원에서 고용 연장이 안 된 사건은 아직도 탈북자 사회에 상처로 남아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탈북한 지 10년이 지나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까지 딴 사람도 편견 속에 기회를 못 얻는 것은 정말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탈북자=약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탈북자를 약자로 내모는 건 아닐까. 올 7월 말 현재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수는 2만4010명에 달한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이들을 위한 취업정책은 통일한국을 대비하는 중요한 과제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탈북자=약자’라는, 우리가 만든 편견의 틀에 갇혀선 노인 일자리 사업 같은 일회성 실업 구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래선 통일 후 남북 주민의 화학적 통합은 어렵다.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한 길은 너무도 멀어 보인다.



조현숙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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