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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죽도에 대나무는 없다

중앙일보 2012.08.21 00:26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소란스럽다. 불볕더위가 물러가고, 유난했던 올림픽도 끝나고, 이젠 좀 그윽하게 앉아 가을을 기다려 볼까 했더니 땅 문제로 극동 삼국이 시끄럽다. 국토를 등기하는 세계등기소가 있을 리 없건만, 남의 땅을 자기 나라 문서에 버젓이 올려놓고 땅 내놓으라고 컹컹 짖어대는 이웃 일본의 무지한 등쌀에 늦여름 고대했던 관조의 시간을 망쳐버렸다. 죽도(竹島)는 일본 땅이란다. 죽도!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짓고 자기 땅이라 우기면 그렇게 되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요즘 유행하는 ‘개콘’ 갸루상한테 물어보면 분명할 텐데 말이다. ‘뇌가 업스무니다’ - ‘뇌가 없으면 그게 사람이야?’ - ‘사람이 아니무니다.’ 이게 답이다!



 일본의 피해의식은 우리의 광복절 즈음해서 극에 달한다. 1945년 8월 15일 아침, 히로히토 일왕이 3분간 중대방송을 했 다. 제목은 ‘대동아전쟁 종결에 대한 조서’였다. 이렇게 말했다.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네 나라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하는 바를 통고시켰다. (중략) 타국의 주권을 배제하여 영토를 침범함과 같은 것은 물론 짐이 뜻한 바가 아니다. (중략)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마구 무고를 살상하고 침해가 미친 바 참으로 헤아릴 수 없음에 이르렀다. (중략) 그럼에도 아직 교전을 계속하려느냐, 기어이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까지도 파각할 것이다.”(김윤식,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에서).



 가해자의 항복선언은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9만 명과 6만 명이 각각 죽었다. 에놀라게이, 폴 티베츠 대령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붙인 B-29를 몰고 무엇인지 모르는 신형 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는 사령부 명령을 어기고 폴은 뒤를 돌아봤다. 버섯구름이 몰려왔고 폭풍이 불었다. 원폭이었다. 폴은 자신도 몰랐던 그 원폭의 가해로 일생을 고통받았고, ‘타국의 주권을 유린했던’ 일본은 피해자로 남았다. 종전선언에는 ‘항복’이란 단어가 없었다. ‘잔학한 폭탄’에 살상된 피해의식만 남았다. 그래서 이때만 되면 일본은 ‘민족의 멸망을 방어했던’ 천황의 전사들을 기리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짐의 일억 만민의 영토’를 회복하려 몸부림치는 것이다.



 자기 땅이라고 우기려면 이름이라도 제대로 불러야 한다. 일본 막부(幕府)가 천연의 자원보고라 부러워했던 독도의 원래 명칭은 송도(松島·마쓰시마)였고, 죽도(竹島·다케시마)는 울릉도였다. 일본 어민들은 송도에 서식하는 해마를 잡으려고 그 먼 뱃길을 마다 않고 들락거렸다. 조선 정부가 바다를 봉쇄하자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는 정부문서[朝鮮通交大紀]에 이렇게 기록했다.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는 일찍이 그 나라 땅임을 의심할 수 없다”고. 1877년 메이지(明治)정부는 이를 재확인했다. “죽도와 송도는 우리와 관계없다(本邦關係無之)”라고.



 그런데 1904년 러일전쟁 당시 남하하는 블라디보스토크함대를 결사 저지해야 했던 일본은 독도의 전략적 가치에 눈을 번쩍 떴다. 내친김에 일본은 1905년 1월 내각회의를 열어 독도를 자기 영토로 등기했다. 무주지(無主地) 섬을 선점하는 것은 국제법상 하등 하자가 없다는 승전국 일본의 강변에 미국과 유럽열강은 짐짓 모른 체했다. 일왕이 비장하게 한 그 말, ‘타국의 주권을 배제하여 영토를 침범함과 같은 것은 물론 짐이 뜻한 바가 아니다’라면 조선, 중국, 만주를 침범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고 군부의 뜻이었나? 조선 역사를 지우고 내선일체를 강제한 것은 ‘인류의 문명을 파각한’ 짓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무력으로 강탈한 작은 돌섬이라도 지금 회복해야 그 피해의식이 조금은 풀리겠다? ‘사람이 아니무니다’다!



 극도의 피해의식은 극도의 망상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죽도와 송도를 헷갈리면서 자기 나라 등기소에 ‘시마네현(縣) 오키노시마마치(町)’로 등기한 죽도(竹島)에 대나무는 없다. 섬의 특징이나 생김새를 지칭해 명칭을 붙이는 것이 조선인의 작명 습관이었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검은 산 같다 하여 흑산도(黑山島), 문장가들이 가득하다 하여 거문도(巨文島), 이런 식이다. 조선식이라면 죽도엔 대나무가 자라야 한다. 그런데 섬머루, 섬초롱, 번영초, 돌피, 왕해국, 모조리 조선 야생화다. 딱 한 그루, 사철나무가 자란다. 그건 영토 욕심 없이 예의지리(禮義之理)를 지키며 2000년을 살아온 한민족의 자존심, 독도엔 대나무가 없고 사철나무가 있다. 헷갈리는 일본이여, ‘뇌가 없구나!’



 죽도의 진정한 내력을 아는 일본인은 적다. 대다수는 종전(終戰)과 함께 죽도를 잃어버렸다는 극우세력의 선동을 믿고 싶은 것이다. 이 절기를 전후해 되살아나는 피해의식이 바야흐로 독도에 옮아 붙었다. 그럼 우리는 가해자로 변신할까? 36년의 피맺힌 세월을 두고?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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