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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연기 60년 … 지금은 노인의 청춘 즐긴다

중앙일보 2012.08.21 00:10 종합 27면 지면보기
연기인생 60년을 맞은 일본배우 나카다이 다츠야(80)는 “1960년대 메이저영화사들과 전속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돈은 많이 벌지 못했지만 다양한 작품·감독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계호 인턴기자]
그는 일본영화의 전설이다. 눈빛으로 연기한다고 해서 ‘안귀(眼鬼) 배우’라 불렸다. 어느덧 팔순에 접어든 나카다이 다츠야(仲代達矢·80)다. 그의 눈빛은 고령에도 여전히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일본 배우 나카다이 다츠야
영상자료원 특별전 31일까지

 나카다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로 연기에 입문한 뒤 60년간 140편의 영화와 60편의 연극, 40편의 TV드라마에 출연했다. 젊은 관객에게는 개와 우정을 나누는 노교수(영화 ‘하치 이야기’),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소년의 자상한 할아버지(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친숙하다.



냉혹한 야쿠자(‘검은 강’), 군국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휴머니스트(‘인간의 조건’), 비장한 죽음으로 무사사회의 허세를 고발한 사무라이(‘할복’), 정의감 넘치는 형사(‘천국과 지옥’) 등 그는 다양한 캐릭터로 전후 일본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표현했다. 구로사와 감독을 비롯, 고바야시 마사키(小林正樹), 이치가와 곤(市川崑) 등 당대 최고의 감독들과 함께 한 그의 필모그래피는 일본 영화사 그 자체다. 배우 인생 60년을 기념해 한국영상자료원이 주최한 특별전(17~31일, 시네마테크)을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7인의 사무라이’에 4초밖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4초의 영광’을 얘기한다.



 “걷는 장면만 찍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구로사와 감독이 ‘걷는 법도 모르냐’며 화를 냈다. 영화에는 4초만 나오고 내 이름도 빠졌다. 배우란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걸 깨닫고 더욱 분발하자고 결심했다. 연극무대에서 열심히 했더니 고바야시 감독의 대작 ‘인간의 조건(1959~61)’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나중에 구로사와 감독이 ‘요짐보(用心棒·1961)’에 출연해달라고 하더라. 안 좋은 기억 때문에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수락했다. 이후 ‘카게무샤(1980)’ ‘란(1985)’에서 함께했다.”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할복(1962)’에 출연한 나카다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들었다.



 “졸업사진 찍는 것도 부끄러워할 정도였다. 집이 가난해 일하면서 야간고교를 졸업했다. 학력 없이 밥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배우라고 생각해 연기학원에 다녔다. 담대함을 기르기 위해 전철에서 시를 낭송했다. 승객들이 항의하면 다른 전철로 갈아탔다. 연극 ‘유령(1955)’에서의 혼신의 연기는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집념의 표현이었다. 이후 ‘악마적 연기’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지금도 연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1985)’에서 나카다이는 자식들에 버림받는 비운의 성주 히데토라를 연기했다.
 -‘하치 이야기’의 자상한 노교수가 냉혹한 사무라이였다는 사실에 젊은 팬들이 놀라지 않을까.



 “나는 작품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해가는 배우다. 그게 내 연기철학이다. 늘 백지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



 -연기학원 ‘무명숙(無名塾)’을 37년간 운영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데.



 “좋은 배우를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재를 털어 시작했다. 연극 중심으로 일본어와 체력훈련을 시킨다. 졸업생 중 전업배우로 활동하는 사람은 10명도 안된다. 배우 훈련도 거치지 않고 등장했다 슬그머니 사라지는 ‘인스턴트 배우’들이 넘쳐나는 환경 때문이다. 모델도, 가수도 연기를 한다. 60년을 연기해 온 배우 입장에서 슬픈 현실이다.”



 -『노화(老化)는 진화(進化)다』라는 책도 냈다.



 “일본말에 ‘적추(赤秋·붉은 가을)’라는 게 있는데 노인의 청춘을 의미한다. 물질욕·출세욕 등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시기다. 지금 가장 행복하고 자유롭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고 싶다. 책 제목은 바로 그런 마음의 표현이다.”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이 많겠다.



 “만 80세를 기념해 내년에 극작가 이오네스코의 ‘수업’이라는 연극에 출연한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부조리극이다. 지금껏 관객이 얼마나 들까 전전긍긍하며 연극해왔는데 이번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그것이 적추의 자유 아닌가. 아직은 은퇴할 수 없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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