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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삽 뜰 날만 … 주민보상 또 미룬 용산 역세권 개발

중앙일보 2012.08.20 00:45 경제 4면 지면보기


지난 13일 오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이하 드림허브)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건물 앞. 60여 명의 용산 서부이촌동 주민이 조속한 토지보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사업 지연으로 지난 5년 동안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가 극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참가자는 “보상을 기대하고 은행 담보대출을 많이 받은 바람에 이자 부담만 한 달에 200만원 가까이 된다”며 울먹였다.

[J Report] 갈피 못 잡는 31조원짜리 공사



 이날 저녁 이 건물 12층에서는 서부이촌동 보상 대책안을 확정하기 위한 드림허브 이사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이사가 보상안 승인을 요구했으나 대주주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측 이사들은 반대했다. 이들은 “(보상 재원 마련을 위한) 25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 발행 계획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서두르지 말자”고 했다. 결국 이날 보상안 승인은 연기됐다. 지난 6월과 7월에 이어 세 번째다. 당초 4월 마련될 계획이던 보상안이 4개월째 미뤄진 것이다.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로 사업비가 31조원으로 추정되는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코레일과 다른 출자사 간 잇따른 내부 갈등에 발목이 잡혔다. 이 때문에 지난 5년간 보상을 기다려온 주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사업비는 크게 불어나 사업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사업이 늦어지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조달한 땅값 이자 4억원 등 하루 손실액이 17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코레일은 2007년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이 회사가 소유한 용산 철도정비창 터(약 40만㎡)에 개발하는 것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한강 경관 개선을 위해 바로 옆 서부이촌동의 12만4000㎡를 포함한 통합개발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세웠다.



 코레일은 이를 받아들였고 그해 12월 사업 주체인 드럼허브가 설립됐다. 드림허브는 코레일(지분율 25%)을 대주주로 공기업(SH공사), 관광회사(롯데관광개발), 자산 운용업(KB자산운용·푸르덴셜부동산투자), 건설업(삼성물산·GS건설·현대산업개발 등) 등 30개사로 구성됐다.



 순항할 것 같던 사업은 처음에 토지자금 문제로 삐걱댔다. 코레일과 재무투자자 등은 건설사들에 다른 개발사업처럼 PF 지급보증을 요청했다. 건설사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PF 지급보증의 리스크가 크다며 거절했고, 이로 인해 사업이 한동안 중단됐다.



 멈춰 선 사업은 지난해 7월 코레일이 한발 물러서면서 재개됐다. 드림허브는 랜드마크빌딩 시공사로 삼성물산을 선정하고 건축설계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그러다 올 2월 코레일에 정창영 사장이 새로 부임한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코레일이 빌딩 선매각 등을 통한 자금 마련 계획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고 나왔다. 새로 파견된 코레일 측 이사들은 서부이촌동 보상 재원 조달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사업 실무를 맡고 있는 용산역세권개발이 나섰다. 외환은행과 미래에셋증권에 앞으로 지어질 ‘랜드마크빌딩’ ‘부띠크 오피스텔’ ‘펜토미니엄 주상복합’ 등으로 자금을 얼마나 마련할 수 있는지 자문을 구했다. 5조6000억원의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드림허브는 자금 조달 방안에 문제가 없다는 금융권의 답변을 받은 만큼 13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코레일이 보상안을 승인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2500억원 CB 발행의 현실성을 문제 삼았다. “지금 같은 경기 침체기에 CB 발행에 참여할 새로운 기업이 나타날 리 없다”는 것이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1500억원의 CB 발행을 성공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무리가 없을 텐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사업 부지를 분리한 ‘단계적 개발’이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주장도 펴고 있다. 골치 아픈 서부이촌동 보상을 뒤로 늦추고 철도창 부지를 먼저 개발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코레일의 한 이사는 이달 초 서부이촌동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실적으로 단계적 개발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해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용산역세권개발에 따르면 단계적 개발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통합개발보다 사업성이 나쁘다. 주민동의서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부이촌동 11개 주민 모임 김찬 총무는 “단계적 개발을 하면 보상 시기가 내년 7월에서 2017년 1월로 3년 반이나 늦어지는데 누가 찬성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보상이 늦어지면서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주택이 늘고 있다”며 “(단계적 개발은) 모두 죽으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현재 서부이촌동 보상 대상 주민 2200명 가운데 1250여 가구가 보상을 기대하고 평균 3억5000만원을 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계적 개발을 하면 사업비도 공사비와 이자 등 간접비 증가로 34조1900억원까지 기존안보다 4조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사업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코레일이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자 서부이촌동을 개발계획에서 분리하려고 트집을 잡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당초 8000억원이던 철도창 부지 땅을 통합개발을 전제로 8조원에 팔아 땅 장사를 해놓고 상황이 악화되자 꼬리를 자르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이를 부인하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입장일 뿐”이라고 했다.



 드림허브는 23일 이사회를 열고 보상 대책안을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이번에도 보상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주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사업은 더욱 꼬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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