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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지 40여 년 … 깊어만 가는 배호 사랑

중앙일보 2012.08.20 00:28 종합 27면 지면보기
가수 배호는 현재진행형이다. 타계 4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60년대 최고 스타였던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진정한 가객(歌客)이었다. [중앙포토]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돌아가는 삼각지’, 배호)


탄생 70주년 콘서트·유품전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명륜동 음악클럽 ‘위(We)’. 관객 10여 명이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하기 시작했다. 40대 회사원부터 잔뜩 멋을 낸 60대 아주머니, 배호의 어린 시절 친구인 노(老)신사까지 ‘돌아가는 삼각지’로 하나가 됐다. 객석에 앉은 40여 명도 박수를 치며 입을 하나로 모았다.



 이날 열린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토크 콘서트&미공개 유품전-추억으로 되살아는 배호, 지금 만나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이 행사는 가수 배호(본명 배만금·1942~71)의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배씨는 광복군의 아들로 중학교 중퇴 뒤 악단 드러머로 활동했다. 스물한 살이던 1963년 ‘굿바이’로 가수 데뷔했지만, 전성기를 맞을 무렵인 66년부터 신장염을 앓기 시작했다. 71년 29세에 유작 ‘마지막 잎새’를 남기고 타계했다.



 그는 소위 ‘배호 스타일’로 유명했다. 쏟아지는 외국 노래 속에 트로트가 위협받던 시절, 매력적인 저음과 군더더기 없는 창법으로 새로운 방식의 트로트를 선보였다. 8년 남짓 활동 기간 동안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두메산골’ ‘누가 울어’ 등 숱한 히트곡을 냈다.



 2000년 최초로 가수의 이름을 딴 길인 ‘배호길(路)’이 서울 삼각지 이면도로에 생겼고, 여섯 개의 노래비가 전국에 세워졌다. 타계한 지 41년이 지났지만, 배호를 기리는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인터넷엔 그의 팬클럽이 40개가 넘는다. 2010년엔 배씨의 삶을 뮤지컬로 만든 ‘천변카바레-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람, 배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8일 배호 탄생 70주년 행사에서 ‘돌아가는 삼각지’를 합창하는 팬들. [사진작가 장성하]
 이날 무대에는 배씨의 교회 합창단 친구, 국민학교·중학교 동창, 작곡가 등이 올라 전설의 스타에 대한 기억을 관객과 나눴다.



 “만금이가(배호의 본명) 눈물·비·안개·이별 같은 가사가 많은, 우울한 편의 노래를 많이 불러서인지 실제 성격도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제론 아주 명랑하고, 활발한 친구였죠.”(국민학교 동창 진장박)



 대중에 배호를 알린 곡인 ‘황금의 눈’(1965) 작곡가인 김인배씨는 “많은 가수가 배호를 흉내내지만, 그 순수한 목소리를 따를 자가 없다”며 그의 뛰어난 음악성을 회상했다.



 ◆재즈로 다시 태어난 배호=이날 재즈가수 말로, 통기타 가수 석명환 등은 배호의 노래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등을 재해석했다. 프랑스 재즈 그룹 프릭스가 2010년 배호의 ‘누가 울어’를 재즈로 편곡한 곡도 발표됐다.



 박성서씨는 “선술집에서 만나던 배호를 와인바에서 만난 것 같은 음악”이라고 했다. 행사에 참석한 프릭스의 리더 에티앙은 배호의 음악만을 재즈로 편곡해 발표하는 ‘배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이탈리아 출신의 5인조 그룹으로 6개월 뒤쯤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한국 친구들로 인해 배호를 알게 됐다. 동서양의 느낌이 섞인 듯한 그의 작품들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배호의 미발표곡인 ‘추억’도 이날 공개됐다. 또 그의 친필 악보, 전성기 시절 받은 팬레터 등 유품도 전시됐다. 공연장을 찾은 ‘배사모(배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김석곤(63)씨는 “60년대로 돌아가 배호를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뒤, 팬들은 배호의 데뷔곡 ‘굿바이’를 마음에 새겼다.



 “내사랑 그대여 가지 마오 가지 마오~ 굿바이 굿나잇 그 인사는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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