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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한·일 통화 스와프 잔혹사

중앙일보 2012.08.20 00:06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정재
경제부장
일본이 돈 가지고 생색을 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며칠 전 일본 관방장관이 “여러 검토를 할 수 있다”며 문제 삼은 한·일 통화 스와프 협정도 뿌리가 깊다. 통화 스와프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어려울 때 서로 돈을 빌려주는 장치다. 시작은 1997년 9월로 거슬러 간다. 일본은 당시 아시아 통화 맹주(盟主)의 야심에 부풀었다. 홍콩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 내심을 드러냈다 “일본이 앞장서 아시아 외환위기국을 구제하겠다”며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기습 제안했다. 태국 바트화, 말레이시아 링깃화가 줄줄이 무너지고 한국 원화마저 위태로울 때다. 당시 일본은 6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 재무부 채권을 가진,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이었다. 달러에 맞짱 뜨는 강한 엔화를 꿈꿨다. 일본 대장성 관리들은 공공연히 “일본이 미국 채권을 대거 팔아치우면 달러화가 흔들릴 것” “중국과 손잡고 미국을 혼내줄 것”이란 소리를 흘렸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결코 그런 일은 없다”며 힘으로 누르고 중국을 부추겨 일본을 고립시켜 무력화했다. AMF 창설은 미뤄졌고, 일본은 아시아 통화 맹주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한국은 그런 AMF를 가장 먼저 지지선언했다. 그해 11월 한국은 다급했다. 달러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외국인 투자자는 ‘서울에서 탈출’했다. 재정경제원 관리들은 백방으로 달러를 꾸러 다녔다. 엄낙용 차관이 그즈음 극비 잠행해 일본에 간 것도 그래서다. 같은 시각 재경원은 ‘AMF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돈 빌리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일본은 매정했다. “위기 땐 서로 돕자”더니 나 몰라라 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대장성 재무관은 매정하게 끊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고 잘랐다. 미국이 용납 안 한다는 핑계를 댔다. 엄 차관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10여 일 뒤엔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직접 날아갔다. 결과는 마찬가지. 미쓰즈카 히로시 대장상은 ‘한국을 돕지 말라는 게 미국의 뜻’이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불과 석 달 전 자기 입으로 “한국이 어려울 땐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던 다짐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한국은 마지막 기대를 그렇게 접고, 며칠 뒤 IMF행을 택해야 했다. 당시 재경원 고위 관리는 “그해 일본이 한 일이라곤 150억 달러의 자금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회수해간 것뿐”이라며 “돈 안 빌려준 건 물론 한술 더 떠 비 올 때 우산을 뺏어간 셈”이라고 돌아봤다.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한·일 두 나라가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기로 한 것은 2000년 5월. 한·중·일과 동남아 국가가 맺은 통화교환협정(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을 통해서다. 이듬해 7월 한국은 일본과 20억 달러의 계약을 한다. 한국으로선 외국과 맺은 첫 통화 스와프 계약이요, 이후 한·미, 한·중으로 이어지는 ‘외환방패’의 시작이었다. 일본으로선 다 꺼져가던 아시아 통화 맹주의 불씨를 살린 셈이다. 2010년 한·일 통화 스와프 규모는 700억 달러로 확대됐다.



 이런 곡절을 잘 알면서 일본이 또 통화 스와프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외환 문제는 한국의 약점이 아니다. 2010년 이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환원,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도입 등 ‘외환 방패 3종 세트’를 마련했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7위, 3000억 달러가 넘는다. 웬만한 파도는 견딜 든든한 둑을 쌓은 셈이다. 일본의 ‘비 올 때 우산 뺏기’는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한 번 틀어졌다고 바로 남의 약점, 그것도 자신들이 소금을 뿌린 상처를 다시 들춰내는 나라가 일본이다. 물론 ‘대국답지 못하다’고 무시하고 말면 그만이다. 그러나 뒤가 켕긴다. 정치의 계절,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권 말이면 국내 정치가 국익이나 국제 관계보다 더 중요해지기 십상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그렇다. 임기 말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왕 사과 발언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약점 없는 경제, 강한 경제가 필수다. 그래야 뒷감당이 가능하다. 또 한 번 일본에 돈 꾸러 갔다 문전박대 받고 돌아올 수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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