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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하코네의 명성이 예전만 못한 이유

중앙일보 2012.08.20 00:04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총국장
2주 전 일본 관광청 장관이 주일 한국특파원들과 만났을 때다.



 “한국인 관광객이 좀 더 일본을 많이 방문해 줬으면 좋겠다”는 장관의 말에 한 특파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일본의 대표적 온천관광지인 하코네(箱根)의 상가 거리는 저녁 6시만 되면 암흑으로 변한다. 모든 여관이 자기네 여관에서만 저녁을 먹게끔 ‘의무화’해 버리니 그렇다. 저녁 먹고 어디 둘러볼 데가 없는 곳이 어디 관광지라 할 수 있나.”



 장관은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해명했지만 답변이 궁색했다. 실제 하코네의 명성은 예전만 못하다. 관광객 입장이 아닌 ‘여관’ 입장에서만 보니 일어나는 일이다. 당장 자신의 숙소 생각만 했지 하코네 온천관광지 전체가 어떻게 바깥에 비춰지는지는 별 관심이 없다.



 최근의 한국과 일본의 첨예한 대립이 딱 그런 모양새다.



 일본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죄 요구 발언에 발끈하고 있다. 강도 높은 보복조치 마련에 혈안이다. 내셔널리즘으로 흐르고 있는 건 언론도 마찬가지다. “(일왕에 대한) 예의도 없느냐” “일국의 지도자로선 자격(함량) 미달”이란 원색적 비난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본 사회의 분노가 이해는 간다. 이 대통령이 ‘오버’를 한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 대한 배경, 그리고 “일본이 초래한 부분은 없는가”란 자성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시선’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독도 방문의 한 이유로 거론한 위안부 문제도 국경을 초월한 여성 인권 문제다. “협의의 강제 동원은 없었다”(2007년 아베 당시 총리)와 같은 무성의한 발언을 일삼는 일본에 대한 불만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애써 외면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독도 방문에 이은 일왕 사죄 발언은 도를 넘어섰다. 이 대통령 본인은 독도나 위안부 문제가 모두 ‘불행한 과거사’의 연장선이란 생각에서 발언했겠지만 그 발언이 왕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일본의 ‘보통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했어야 했다. 독도 방문의 진실성도 일왕 사죄 발언으로 퇴색됐다. 아니 한국에 호감을 갖던 일본의 보통 사람들마저 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가장 ‘친한적(親韓的)’인 일본 지도자로 불리는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직접 겨냥한 이 대통령의 발언에 어리둥절해하는 일본인도 많다. 언론이 제기할 문제와 지도자가 할 말은 따로 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양국 지도자와 국민들이 한발 물러나 진지하게 상대방을 생각할 때다. 민족주의를 부추겨 득을 보는 게 없다는 건 양국 모두 역사를 통해 습득한 지혜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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