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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공약에 발목 잡힌 SOC사업

중앙일보 2012.08.15 01:50 종합 8면 지면보기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공사 현장. 이 도로는 2014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서울시가 재정 여건을 이유로 2016년으로 미뤘다. [김성룡 기자]


6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동 기아대교 앞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공사 현장. 관악산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작업이 한창인 곳에 골재를 실은 트럭이 흙먼지를 내며 오간다. 서울 서남권과 경기도 광명·안양에서 서울 강남권을 연결하는 강남순환도로는 서울 동서 간 교통체증을 해소할 도로로 기대를 모으던 민간투자 사업이다.

딜레마에 빠진 서울시



 하지만 2007년 오세훈 시장 시절 착공한 이 공사는 준공이 당초 2014년에서 2016년으로 연기됐다. 재정 여건을 이유로 서울시가 올해 필요한 시 부담분 2700억원 중 1612억원만 배정해 공기가 늦춰진 것이다. 경기도 광명에서 강남구 삼성동으로 출근하는 이준규(35)씨는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려면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도 한 시간 이상 걸린다”며 “진행중인 공사를 갑자기 미루는 서울시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사 연기로 서울시는 민자 사업자에게 2년치 지연 이자(약 300억원)도 물어줘야 할 판이다.





 강남순환도로뿐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2011년 10월 27일) 이후 서울의 주요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무산되고 있다. 서남권 교통난 해소를 위해 전임 시장 시절부터 추진되던 서부간선지하도로와 서울제물포터널도 민자업체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해 예정했던 올해 착공은 물 건너 갔다. 서울시가 발표한 신림선·동북선 등 7개 경전철 사업도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SOC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서울시의 재정 여건 탓도 있지만 박 시장 공약과도 관련 있다는 게 시 안팎의 분석이다. 박 시장이 공약한 ▶채무 7조원 감축 ▶복지예산 비중 30% 달성 ▶임대주택 8만 호 건설 등 주요 공약이 서로 얽혀 있다. SH공사가 빚을 줄이려 1조원대 부동산 매각에 나섰지만 경기 침체로 매수자가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이 재원으로 임대주택을 지으려던 계획도 차질이 빚어져 다른 돈을 끌어다 지원해야 할 상황이다.



 살림이 버거운데도 복지 지출을 늘리려면 다른 부분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2012년 시 전체 예산 21조7829억원(총계 기준)의 25.7% 수준인 사회복지 예산(5조6046억원)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려면 약 1조원 이상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 특히 박 시장은 지난달 건강주치의제와 영유아·산모 방문 돌봄 서비스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의료 마스터 플랜’을 위해 보건의료 예산만 1000억원을 증액한다고 선언했다. 2년이 남지 않은 임기까지(2014년 6월) 각종 복지 공약 이행과 인프라 사업을 병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기동민 시 정무수석은 “세수가 빠듯해 채무 감축 등 박 시장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전임자가 벌여놓은 몇 백억짜리 인프라 사업을 시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뒤로 밀린 인프라 사업이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자 시민들의 보편적 복지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손봉수(도시공학) 연세대 교수는 “부채를 줄이고 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SOC 투자에 소홀하면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형주 정무부시장은 “인프라 사업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정 사정을 봤을 때 막대한 부담이 들어가는 사업은 이롭지 않다. 시작하지 않은 사업은 아예 철수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도 9일 본지 기자와 만나 “인프라 투자만 줄이는 게 아니라 모든 부분이 조금씩 양보해 복지 분야에 더 투자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SOC사업 대부분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용역을 통해 타당성이 검증된 것들이다. 전문가들은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을 놓고 벌어진 서울시와 민자업체 간의 갈등 여파로 민자사업도 활성화되지 못해 박 시장이 SOC사업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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