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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 서울관, 600년 역사 현장 불탔다

중앙일보 2012.08.15 00:53 종합 20면 지면보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터에 있던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의 1932년 모습. [사진 건축가 김종헌]


경복궁 옆 길 건너에 위치한 이곳엔 조선시대 왕실 친척들의 사무를 총괄하는 종친부와 언론기관인 사간원,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이 있었다.



근대 이전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을 이곳에 세웠다. 1929년 건축가 박길룡(1898∼1943)이 설계한 당시로선 첨단의 건물이 아직 남아 있다. 원형 홀이 특징인 이 3층 건물은 등록문화제 제375호다.



맨 오른쪽 원형 홀이 있는 건물은 2008년까지 국군기무사령부로 쓰였다. 1929년 박길룡(1898∼1943)이 설계한 등록 문화재 제375호다. [사진 건축가 김종헌]
1945년 광복 이후 서울대 의대 제2부속병원, 국군수도병원으로 변경·사용되다가 71년 국군 보안사령부(90년대 기무사령부로 개칭)가 들어서면서 이 일대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장소가 됐다.



79년 10·26 사태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신이 처음 안치된 곳도 이곳이다. 사태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 주도로 12·12 쿠데타가 모의된 장소이기도 하다.



2010년 말까지 이 자리에 있었던 국군서울지구병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신도 이곳에 처음 안치됐다. [사진 건축가 김종헌]
한국사 600년의 기억을 내장한 이곳이 한국을 대표할 새 미술관 터로 낙점된 것을 놓고 문화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해 왔다.



배재대 김종헌(건축학) 교수는 “이 땅과 건물이 간직한 역사의 흔적을 품어 독자적 공간의 미술관으로 태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무리한 일정의 공사를 우려하는 지적이 잇따랐다. 13일의 화재는 우려를 현실로 확인시켰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에게 파리 퐁피두 센터나 런던 테이트 모던 같은 미술관을 가질 자격이 있나 싶어요.”



단국대 하계훈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주임교수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그간 프랑스와 영국의 이 두 미술관을 롤모델로 꼽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을 역임한 하 교수는 “2년여 기간에 모든 걸 해치우겠다는 미술관 측의 발표가 무슨 주택단지 조성사업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퐁피두 센터는 6년, 테이트 모던은 8년에 걸쳐 완공됐다. 제대로 된 미술관 건립에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81년 이곳에 테니스장이 건설되면서 조선시대 종친부 유적은 인근 정독도서관으로 이전했다.



기무사는 2008년까지, 병원은 2010년 12월까지 여기 있었다. 종친부 건물인 경근당·옥첩당(서울시 유형문화재 9호) 등은 미술관 공사와 함께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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