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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DJ의 ‘건국’과 MB의 ‘건국’

중앙일보 2012.08.15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수길
주필
얘야, 오늘은 공휴일이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풀 꺾였구나. 머지않아 서늘한 바람이 불면 이글거리던 폭염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터. 오늘 8·15 광복절의 기억은 어디에 가 있니.



  이 나라는 8·15에서 비롯됐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듯, 이 나라도 태어났다. 8·15가 어떤 날이었는지 역사의 기록을 한번 함께 보자꾸나. 어른들도 잘 모르는 기록을.



 1945년 8월 15일. 우리를 식민지로 삼고 있던 일본이 소련·미국 등과의 전쟁에서 항복한 날이다. 일본은 우리 땅에서 나가야 했다. 우리 땅 북쪽은 소련군에게, 남쪽은 미국군에게 넘겨주고. 그게 우리가 맞은 ‘해방’이다.



 1946년 8월 15일. 우리는 ‘제1회 해방 기념일’로 이날을 맞았다.



 1947년 8월 15일. 이날은 ‘해방 2주년 기념일’이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 열렸다. ‘해방 3주년’과 아울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기념식이었다. 다만 남쪽뿐이었다. 북쪽은 한 달쯤 뒤인 9월 9일 따로 정권을 세웠다. 남쪽은 자유민주주의로, 북쪽은 공산주의로.



 1949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제1회 독립 기념일’ 행사가 치러졌다. ‘해방’이 ‘독립’으로 바뀌었지. 주권·영토·국민 3대 요소를 갖춘 나라를 세운 지 1년이 되었으니까.



 1950년 8월 15일. 북쪽이 쳐들어온 6·25전쟁 때문에 남쪽으로 피란 간 대한민국은 임시 수도 대구에서 ‘제2회 광복절’ 기념식을 연다. 광복절이란 이름이 이때 처음 씌어졌다. 그 전에 국회가 4대 국경일 이름을 새로 정하면서 헌법공포기념일은 제헌절로, 독립 기념일은 광복절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광복절은 광명의 역사를 다시 찾은 날이라는 뜻이지. 어떻든 이때 광복절은 독립 기념일 이름을 바꾼 것이었단다.



 1951년 8월 15일. 공산군에게 더 밀려 낙동강 밑으로까지 피란 간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 수도 부산에서 ‘제3회 광복절’ 기념식을 연다. 여전히 1948년 8·15 정부 수립을 기리는 날이었지. 그러나 이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광복절은 1945년 8·15 해방을 기념하는 날로 겹쳐 쓰이기 시작한단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조국 광복으로 염원했고, 일제와 싸우던 독립군의 이름이 광복군이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광복절은 1945년 8·15 해방을 기념하는 날로 굳어져 왔다. 오늘도 67주년 광복절이라 하지 않니. 한데 다음과 같은 일은 어찌 보아야 하니.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정부는 53주년 광복절을 ‘정부 수립 50주년’으로 공식 기념했다. 아무 갈등 없이. 한국은행은 ‘대한민국 50년 기념 주화’를 발행했고 김 대통령은 ‘제2의 건국’을 제창했지. 그럼, 첫 번째 건국은 48년 8·15가 아니겠니.



 2008년 8월 15일. 63주년 광복절에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주년 기념식’을 열었으나 반쪽짜리 행사가 되고 말았다. 1948년 8·15를 건국 기념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불참했기 때문이었지.



 8·15가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날이냐. 좌파 정권이든 우파 정권이든 들어설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한 줄기 아니겠니.



 1948년 8·15에 남쪽만의 정부를 세워 민족 분단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지. 하나 그것은 유치한 주장이 된 지 오래란다. 북쪽 김일성은 이미 그 전부터 소련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단독 정부를 세우려 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소련 측 문서에 의해 밝혀진 게 언제인데-. 해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남쪽만이라도 공산주의 아닌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워야겠기에 미국과 싸움을 해가며 1948년 8·15에 힘겹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이었는데-.



 얘야, 역사 교과서도 이리 쓰고 저리 쓰는 나라에서 비록 헷갈리겠지만 다음과 같은 구별은 분명히 하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북한도 포용해 가면서 언젠가 통일을 이루자는 사람들과, 민족의 이름을 팔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을.



 자유는 민족에 우선한다. 그것이 이승만의 결단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국가의 원수(元首)를 국민의 원수(怨讐)라고 비틀 수도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지도자의 ‘생일’을 최대 명절로 기념하는 북한에서 그런 자유는 꿈도 못 꾼다.



 북한은 9월 9일을 9·9절이라 하여 정권 창건 기념일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 8월 15일은 그저 광복절일 뿐이란다.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나라이면서도 공식적인 건국 기념일이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김수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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