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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따로 마음 따로? 쾌락이란 나눌수 없는 것

중앙선데이 2012.08.11 23:05 283호 28면 지면보기
마음과 몸의 관계를 이해하는 두 가지 상이한 전통이 있다. 마음의 기쁨만을 중시하는 전통과 몸과 마음의 기쁨 모두를 중시하는 전통이다. 전자에 따르면, 마음의 능력과 몸의 능력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그러니까 마음의 기쁨을 위해서는 몸의 기쁨을 희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성적 쾌락은 정신적 쾌락의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서양과 동양의 주류 문명권, 그러니까 기독교나 유교의 정신주의가 표방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관능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후자의 전통은 몸과 마음의 능력이 정확히 비례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몸이 기쁨으로 충만했을 때 우리의 마음도 기쁨으로 들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의 전통에서는 성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은 쾌락의 두 가지 표현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 <17> 쾌감

우리에게 남미 문학이 가진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미 문학은 우리에게 몸의 쾌락이 마음의 쾌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 그러니까 쾌락은 관능적인 기쁨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1966년 조르지 아마두의 대작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Dona Flor e Seus Dois Maridos)』도 마찬가지다. 도나 플로르라는 매력적인 여성이 삶의 희열을 두 가지 기쁨, 그러니까 마음의 기쁨과 몸의 기쁨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약사이자 신사인 테오도르와 재혼했지만 플로르는 이미 고인이 된 첫 번째 남편 바지뉴를 잊지 못한다. 아니, 테오도르와의 결혼생활이 지속될수록 그녀는 바지뉴를 갈망하게 된다. 두 번째 남편은 그녀에게 정신적 기쁨을 제공하지만, 육체적 기쁨은 전 남편만큼 안겨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열망이 너무 컸던 탓일까? 바지뉴는 일종의 환각이나 유령의 형식으로 그녀 앞에 나타나더니 남의 아내가 된 그녀를 당당하게 유혹한다.

물론 처음에 그녀는 바지뉴의 유혹에 저항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점점 육체적 기쁨이 없다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기쁨도 기형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이런 그녀의 깨달음은 바지뉴의 입을 통해 명료하게 표현된다.

“당신의 집, 부부간의 정절, 존경, 질서, 배려, 안정. 그런 걸 주는 건 그자의 몫이야. 그자의 사랑은 고상한 (그리고 따분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당신이 행복하려면 그게 필요해. 하지만 당신이 행복하려면 내 사랑도 필요하지. 이 음탕하고 못되고 비뚤어진 사랑, 난삽하고 거친 사랑, 당신을 괴롭히는 사랑이. … 그는 당신의 외면적 얼굴, 나는 당신의 내면적 얼굴, 당신이 외면할 방법도 모르고 그럴 수도 없는 연인이야. 우리는 당신의 두 남편, 당신의 두 얼굴, 당신의 긍정적인 면이자 부정적인 면이지.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우리 둘 다 필요해.”

작가가 여주인공의 이름을 ‘플로르’라고 지은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플로르(Flor), 그것은 꽃 아닌가? 그렇다. 지금 작가는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그러니까 꽃으로 활짝 피는 순간을 문학적으로 포착하려는 것이다.

“이제는 죽어도 좋다”는 탄식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것은 바로 마음과 몸이 동시에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순간 아닌가. 스피노자는 이 감정을 이렇게 말한다.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는 기쁨(laetitia)의 정서를 쾌감(titillatio)이나 유쾌함(hilaritas)이라고 한다.”(스피노자의 『에티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우리의 감정은 몸과 마음 그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당연히 기쁨도, 그것이 완전한 기쁨이라면, 몸이나 마음 중 어느 하나를 희생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할 때,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이 쾌감에 전율할 때, 바로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 아닐까?

바지뉴의 유혹을 긍정하는 순간, 플로르는 꽃처럼 피어나게 된다. 그렇지만 바지뉴라는 ‘환각’으로부터 플로르가 꽃으로 피어날 수는 없는 법. 살아 있는 남자와의 사랑을 통해서만 그녀는 완전한 기쁨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결국 플로르는 남편 테오도르와도 격식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결합하는 섹스를 통해 바지뉴라는 환각 없이도 육체적 희열을 얻는 데 성공한다. 바로 그 순간 바지뉴라는 유령이 눈사람처럼 녹아 사라지게 되는 이유다.

바지뉴는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 것일까? 그렇지 않다. 바지뉴라는 환각이 깨닫게 해준 육체적 기쁨의 중요성은 영원히 플로르와 함께할 테니까. 바지뉴가 사라진 것은 그녀의 내면으로 들어와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플로르는 이렇게 외칠 수 있었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어요, 그의 사랑 없이는. 차라리 그이와 함께 죽는 게 나아요. 그를 곁에 둘 수 없다면, 길을 지나는 모든 남자한테서 필사적으로 그를 찾을 거예요. 나는 모든 남자의 입에서 그의 맛을 찾으려 애쓸 것이고, 굶주린 늑대가 되어 울부짖으면서 거리를 쏘다닐 거예요. 그이가 곧 나의 덕이에요.”
바로 이 대목에서 남미 문학의 관능성은 정점에 이르며, 우리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당신은 자신의 바지뉴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꽃처럼 활짝 피지 못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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