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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메이커 광장 ⑦ 일본 여자축구의 성공 비결, 시스템

중앙일보 2012.08.11 01:13 종합 10면 지면보기
홍은아
FIFA 국제심판
한때 여자축구 강국으로 군림했던 중국은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쑨원을 앞세워 1990년대 브라질·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이후 세대교체에 실패하면서 국제대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일본 여자축구가 중국의 바통을 이어받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처럼 단발성으로 반짝하고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일본은 어느 대회든 결승에 진출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지난해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일본 여자축구가 런던 올림픽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축구의 성지’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미국에 1-2로 졌지만 경기 내용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크로스바를 맞히는 등 결정적인 서너 차례 기회 중 한 번만 살렸어도 승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현장에서 경기를 관전했는데 손에 땀을 쥘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일본 여자축구 올림픽대표팀이 은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일본 여자축구 힘의 원천은 89년 출범한 여자축구 리그인 ‘나데시코 리그(L-리그)’에서 찾을 수 있다. 나데시코 리그는 실업리그지만 1부와 2부로 나뉘어 승강제로 운영된다. 프로는 아니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여기서 발굴된 우수 선수들을 일본축구협회가 연령대별로 따로 모아 수시로 훈련시켰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지난해 월드컵 우승 주역인 사와 호마레(34), 2008년 뉴질랜드 U-17(17세 이하) 여자월드컵 MVP 이와부치 마나(19) 등이 발굴됐다.



 세대가 지나도 일관되게 지속되는 플레이 스타일도 강점으로 꼽을 수 있다. 국제심판 10년을 하면서 지켜본 일본 여자축구는 짧은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지향하고 세트피스에 강점을 보인다. 미드필더를 거치는 플레이를 선호하는 건 남자축구나 여자축구나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골키퍼 프로젝트’를 마련하는 기획력도 돋보인다. 골키퍼 프로젝트는 키가 큰 배구나 농구선수들을 데려다 골키퍼로 집중 육성하는 것이다. 배구와 농구를 통해 익힌 운동감각에 큰 키가 더해지며 서구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게 됐다.



 일본의 성공을 직접 지켜본 필자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중 하나는 ‘저 자리에 한국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한국 여자축구는 2010년 U-17 월드컵에서 우승할 정도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유소녀 축구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문화와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1가족 1자녀 시대에 부모들은 웬만하면 여자아이에게 운동을 시키려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장기적으로 여성도 부담 없이 스포츠를 즐기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아직까지 축구는 남성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 나데시코 리그의 유명 팀은 3만 석 규모의 경기장이 팬들로 꽉 찬다고 한다. 한국도 인프라와 인식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홍은아 FIFA 국제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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