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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시인' 안도현 "안면도 없는 김제동씨가…"

중앙일보 2012.08.11 00:32 종합 21면 지면보기
‘일요일은 우리도 쉬는 색깔이었으면’. 언젠가 제 트위터(@ahndh61)에 올린 글입니다. 팔로어 중 누군가가 쓴 ‘색깔들도 쉬어야 하나 봐. 어쩌면 그것도 좋은 일이야. 그렇지 않으면 색깔에 익숙해져 언젠가는 색깔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라는 글을 본 뒤였죠. 아마도 제가 주말이 그리 한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나 봅니다. 시인이 뭐가 그리 바쁘냐고요? 글만 쓰는 게 아니라 학생들도 가르쳐야 하고(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인터뷰나 강연 같은 외부 활동도 생각보다 많은 탓이죠. 최근엔 『북항』이란 신간이 나와 방학인 데도 스케줄이 빡빡하고요. 좋은 시란 자고로 홀로 사색하며 나오는 법. 그래서 무채색처럼 심심한 주말을 늘 욕망합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강연 여행 … 심심한 주말을 욕망합니다
[나의 아름다운 주말] ‘연어 시인’ 안도현

부산·광주 거쳐 마라도까지 안 간 곳 없어



작가는 주말마다 전북 완주군의 작업실을 찾는다. 마루에 걸터앉아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고독을 즐기기에 좋다. [박종근 기자]


 쉰 하나, 나이가 드는 걸까. 아침잠이 줄어든다. 다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전날 새벽까지 술을 먹어도, 열 시에 일찍 잠들어도 알람을 맞춘 듯 말이다. 식구는 아내와 나, 둘뿐이다. 딸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고 아들은 군대에 갔다. 아들은 그렇다 치고 딸도 두 달에 한 번이나 전주에 내려온다. 품 안의 자식이란 말, 꼭 맞다.



 아침을 먹고 나면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여행? 아니다. 목적지는 강연장이다. 그것도 전주 시내가 아니라 지난주는 부산, 지지난주는 광주, 뭐 이런 식이다. 마라도까지 가봤으니 지금껏 휴전선 이남에 안 가본 데가 없다. 설마 매주 이럴까 싶겠지만, 실제 그렇다. 평소 강연해 달라는 부탁 전화가 하루에도 서너 통씩 걸려온다. 맘 같아선 죄다 거절하고 싶지만 “네” 할 때가 많다. 왜? 모두 친한 사람들 소개로 전화한 이들이라 차마 자르기가 ‘거시기’하다. 이젠 전주에서 지방인사가 되다 보니 그 ‘책임감’도 만만찮고.



 그나마 다행인 건 운전을 좋아한다는 거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날 방해하지 못한다. 학교 연구실에서조차 난 혼자가 아니다. 학생들과 동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언제 전화도 올지 모른다. 하지만 핸들을 잡고 있는 동안엔 세상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완벽한 모르쇠다. 참고로 내겐 휴대전화가 없다. 5년 전 어쩌다 잃어버리게 된 뒤로 다시 장만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 홀로 드라이빙, 속세를 벗어난 듯 후련하다.



 두 시간의 강연에선 대개 비슷한 내용을 얘기한다. 시와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시의 매력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시를 쓰게 됐는지 등이다. 시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시의 세계로 이끄는 방법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강연을 그리 달가워하진 않는다. 왜? 시인이 시로 말하지 않고 자꾸 말을 해야 한다는 게 아무래도 불편하다. 같은 소리를 약장수처럼 반복하는 게 뭐 그리 재미있겠나. 워낙 많이 강연을 하다 보니 어느새 레퍼토리가 생겼다. 강연 대상자에 맞춰 5개쯤 되는 레퍼토리에서 하나를 고르는데, 이제는 어느 대목에서 웃음이 터질지 아는 수준이 됐다.



 강연이 끝나고 기다려지는 건 그 지역 문인들과의 만남이다. 친구들이 전국구로 있다. 부산을 가면 최영철·김성배 시인, 울산·마산은 정일근 시인, 천안은 이정록 시인, 안동은 안상학 시인 등등이다. 그들과 만나 술 한잔 하며 사는 얘기, 작품 얘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게다가 반가운 손님이 왔다고 때마다 지역 맛집으로 데려가 주니 그 또한 즐겁다. 부산에선 도다리회나 잡어회, 통영 가면 서호시장의 시락국, 목포에선 영란횟집의 민어회, 겨울철 홍성이나 서산 쪽을 가면 새조개, 안동은 육회·문어, 3월의 부안은 주꾸미…. 그러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매주 전국으로 주말여행을 다니는 셈. 남들처럼 여름휴가를 따로 떠나지 않는 이유다.



휴대전화 안 쓰면서도 트위터는 열심



 일요일 오전, 게으름을 피워도 좋으련만 마음이 급하다. 아침을 먹자마자 내 마음의 피난처로 얼른 떠난다. 작업실이다. 1997년 전업작가를 시작하며 그곳을 구했다. 그때는 학교에 적을 두지 않았으니 글 쓸 곳이 필요했다. 아내와 둘이 자리를 보러 다녔다. 조건이 있었다. 첫째, 시골이면서 우사가 없을 것. 둘째, 집이 있는 전주시내에서 멀지 않을 것. 셋째, 값이 쌀 것. 다행히 만족스러운 자리를 찾았다. 전북 완주군의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추밭·담배밭에 맑은 계곡까지 흐르는 조용한 동네였다. 지금은 외지인들이 별장 삼아 양옥집을 짓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외지인은 나뿐이었다. 거기서 100평(330㎡) 남짓한 오래된 집을 평당 20만원에 사서 개조했다. 구들장을 떼 보일러를 놓고 별채를 뜯어내 마당을 넓힌 뒤 잔디를 심었다. 산길을 가다 소나무·단풍나무·산딸나무·화살나무·이팝나무 등을 구해 와 돌담을 따라 심기도 했다. 소형차 안에 싣고 왔던 그 나무들이 이제는 지붕에 닿을 만큼 자라났으니 세월이 무상하다.



 지금은 연구실이 생겨 이곳에서 글을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물론 책도 예전 것들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작업실을 없앨 수도, 발걸음을 끊을 수도 없다. 그저 마음 속 고향이랄까. 지금껏 나온 10권의 시집 중 5번째 시집부터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여기서 글을 쓰진 않았지만 여전히 작업실은 시상(詩想)의 보고(寶庫)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느 겨울날 가보니 마룻바닥에 박쥐 똥이 있었다. 아마도 며칠간 인적이 뜸한 곳이어서 누고 간 모양이었다. 나는 그 박쥐들이 보고 싶어 마루에 앉아 한참 기다렸다. 한데 박쥐가 오지 않았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얘네들 배변 사이클을 방해하고 있구나’라고. 이런 생각에서 ‘박쥐 똥을 쓸며’(『북항』 수록)란 시가 나왔다.



 요즘 주말마다 작업실에서 하는 일은 잡초 뽑기다. 마루에 있으면 눈앞 마당에 잡초만 보인다. 저걸 얼른 뽑고 가야지 하는 마음에 면장갑을 끼고 호미를 든다. 그렇게 두 시간쯤은 쪼그리고 앉아 연신 풀을 뽑는다. 어찌 보면 ‘노동’ 같지만 기실 이게 다 시상을 구상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다리 틀고 앉아 명상만 한다고 시가 되나. 뭐든 보고 듣고 하면서 생각해야 시가 써진다. 시인이 쓰기보다 신문이고 책이고 더 많이 읽어야 하는 건 그런 이유다.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이런 연유로 나는 세상 소식에 꽤 관심이 많다. TV를 즐겨 보진 않지만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빼놓지 않는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쓰지 않으면서도 트위터를 한다. 하루 세 번쯤 들어가 글을 읽고 또 올리기도 한다. 140자 글을 읽다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인지 순식간에 알게 되니까. 얼마 전 내가 도종환 시인의 교과서 시 삭제에 반발해 한마디한 게 그리 큰 화제가 될 줄 몰랐다. 안면도 없는 김제동씨가 그 글에 화답을 해주지 않나,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재미있는 세상이다.



저녁엔 가족·문인들과 바비큐 파티



 풀도 뽑고 나무 가지치기도 하고 집 안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덧 점심 시간. 오기 전에 미리 장을 봐와 끼니를 해결한다. 솜씨 없이도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국수가 주메뉴다. 그러고 나선 산책 삼아 동네 한 바퀴. 웬만한 동네 어르신들을 다 알고 지내 자연스레 인사말을 나눈다. 풀과 나무의 이름을 구별해내는 것도 산책의 묘미다. 이제는 모르는 게 거의 없을 정도가 됐다. 물론 용택(김용택 시인)이 형이 너무 아는 척을 해서 뒤질세라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끔씩 저녁에는 작업실로 친구와 가족을 부른다. 마당에 장작을 피우고 바비큐 파티를 한다. 처음엔 쌓여가는 종이 쓰레기나 태울 요량으로 시작했는데 얼마 못 가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장만했다. 요즘 유행이라는 캠핑을 먼저 시작한 셈이다. 소설가 윤대녕과 김훈도 이곳을 다녀갔다. 안동에 사시는 어머님이 오실 때나 군대서 아들이 휴가 나올 땐 제법 가족별장 같은 운치가 생긴다.



 이벤트가 없는 날도 작업실을 나와 곧장 집에 가진 못한다. 문인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 가장 즐겨 가는 곳은 홍도주막. 막걸리 세 통이 들어가는 한 주전자를 주문하면 줄잡아 열댓 가지가 넘는 안주가 공짜로 차려진다. 따로 저녁 끼니가 필요 없다. 간혹 밥을 먹는 자리일 땐 한밭식당으로 향한다. 옛 도청 주변에는 백반집이 몰려 있는데 웬만한 비빔밥집·한정식집보다 낫다.



 가볍게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땐 ‘가맥(가게 맥주)’이 최고다. 전주에선 노점 가게 앞에 테이블을 놓고 맥주를 마시는 게 하나의 문화다. 전일슈퍼라는 원조집이 따로 있지만 나는 좀 한가한 임실슈퍼를 찾는다. 안주로 내놓는 명태포를 정리하고 남은 북어 머리에 두부·콩나물·청양고추·수제비를 넣어 끓여내는 북어수제비가 비밀병기다. 단 어디를 가든 일요일 밤엔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만 마시자는 게 원칙. 주말도 마무리해야 하거니와 요즘 자꾸 배가 나와 신경이 쓰여서다. 그래, 이번 주말엔 전주천을 따라 한밤 달리기라도 해볼까.



주말 속 그곳



홍도주막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1가 620-11 /063-224-3894

한밭식당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4가 31-2/ 063-284-3367

임실슈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1가 14-2/ 063-288-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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