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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세계지도, 나일강 위치까지 어떻게 알았을까

중앙일보 2012.08.11 00:19 종합 24면 지면보기
문명의 기억, 지도

KBS 제작팀 지음

중앙books

336쪽, 1만6000원




조선은 건국 초인 태종 2년(1402년)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이하 강리도)를 만들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여러 나라의 수도를 표시한 지도다.



 인도의 델리(만리·萬里), 이라크의 바그다드(육합타·六合打),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마갈·馬喝), 비잔틴의 콘스탄티노플(골사소석나·骨思巢昔那), 프랑스 파리(법리석·法理昔)까지 등장한다. 700년 전의 지리 지식이 놀랍다. 흥미로운 건 지도 속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이다. 긴 삼각형에 남단 희망봉 자리가 뾰족한 게 실제와 흡사하다. 놀라운 일은 이 지도가 1497년 포르투갈의 다 가마가 서양인으론 처음 희망봉에 도달하기 95년 전에 제작됐다는 점이다.



 대륙 한복판에 큰 호수가 있고, 두 물줄기가 합쳐져 흐르는 강도 보인다. 빅토리아 호수와 나일강이다. 빅토리아 호수는 서양에 알려진 건 1858년 영국인 스피크에 의해서다. 그렇다면 조선 초 지식인들은 강리도의 근거가 되는 지리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을까.



 이런 의문은 KBS제작팀이 전 세계에 다니며 지도와 문명의 관계를 밝혀내 이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풀린다. 이를 글과 사진으로 정리한 게 이 책이다. 제작팀의 취재 결과 강리도의 지리 정보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온 설화와 정보가 문명 교류를 통해 아랍세계와 몽골제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도달했다.



 이보다 조금 앞선 1376년 유럽의 선진 무역지대이던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 지방에서 만든 ‘카탈루냐 세계지도’를 보자. 여기엔 어디서 들었는지 1312~1332년 사하라 이남 말리 제국의 황제였던 만사 무사가 금덩이를 들고 있는 그림은 있다. 메카 순례를 가면서 엄청난 금을 뿌려 수십 년간 중동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그 부자 군주 말이다. 하지만 정작 지도에 아프리카 대륙은 사하라 이북만 나와 있을 뿐이다. 이는 당시 유럽의 지리 지식이 동양보다 뒤졌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제작팀은 고지도가 한 시대의 지리 지식은 물론 대외교류 수준과 세계 인식론까지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한국 고지도에서 예외 없이 한반도가 실제보다 크게 그려진 것은 주체적인 세계인식의 결과라는 것이다.



 지도는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했다. 한때 지리 정보와 지도 제작 능력은 곧 국력이었다. 게다가 지도는 인류의 생존과 꿈을 담아낸 소중한 인문학적 기록이기도 하다. 지리 기록을 넘어 인류 역사의 소중한 사료라는 게 이 책을 관통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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