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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그리스인 조르바』 함께 읽다, 자유의 의미 깨닫다

중앙일보 2012.08.11 00:18 종합 24면 지면보기
책을 같이 읽고 생각을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책을 소비하고 있는 ‘책만세’ 회원들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서계호 인턴기자]


미국의 철학자 랠프 월도 에머슨(1803~82)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라고 했다. 같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 누워 있던 활자는 생동하는 지식이 되고 사상이 되며 유희가 된다. 여기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가 어떤 사교모임보다도 친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2001년에 결성됐고, 회원이 8만 9000여 명인 온라인 독서 동호회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세상(책만세)’이다. 온라인 독서 모임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그들에게 함께 읽는 즐거움을 물었다.

온라인 최대 독서모임 ‘책만세’



 지난달 21일, ‘책만세(cafe.daum.net/liveinbook)’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열리는 서울 홍익대 부근의 한 스터디룸을 찾았다. 이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클릭 신공’이 필요하다. 모임마다 선착순으로 20명 안팎을 모집하는데 그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한 달 평균 3번, 운영자가 게시판에 날짜와 책 제목을 올리면 순식간에 참여 댓글이 달린다.



 오늘의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제법 어려운 소설이라 그런지, 482쪽의 두꺼운 책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생각을 정리해온 노트까지 옆에 두니, 책을 뜯어 읽은 흔적이 역력하다.



 ‘책만세’ 운영자인 허순정(44)씨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자”고 운을 띄었다. ‘자유, 본능, 그리스, 열정, 춤, 호탕함, 과부, 비합리, 제도, 신, 죽음’ 같은 단어가 쏟아졌다.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배에서 젊은 지식인 ‘나’는 60대 노인이지만 거침없는 자유인 조르바를 만난다. 가진 것은 없지만 자유와 혜안이 있는 조르바는 숨막히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잠깐 쉬었다’ 가라고 말하는 듯 하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회원들은 조르바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욕망과 욕구를 내려놓는 것’이 자유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욕구 자체를 뛰어 넘어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조르바의 자유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조르바처럼 살 수 없으며, 방종과는 구별이 돼야 한다는 일침도 있었다.



 카잔차키스의 다른 책까지 섭렵한 회사원 손경수(29)씨는 “저자는 터키에 정복당한 크레타 섬에서 그리스인으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였던 저자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독립투쟁을 하다가 처형당한 시신에 입을 맞추도록 했다. 즉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으로서 해방과 자유를 꿈꿨던 사람”이라며 시대적 배경을 설명했다. 이 책의 근간에 흐르는 니체의 초인사상, 그리스·헬레니즘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지자 논의가 더욱 풍부해졌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천원석(45)씨는 “이 책이 왜 지금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현대인이 말하는 소위 경제적 자유를 뛰어넘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이 방황하는 40대를 위로하는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어 아쉽다”고 했다.



 영화로 만든 ‘그리스인 조르바’ 까지 감상한 뒤 천안에서 올라온 김영삼(34)씨가 4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만약 조르바가 이 자리에 왔다면 우리의 토론이 너무 이성적이라 책상을 뒤엎었을 것 같아요. 조르바처럼 본능적으로 살자고요.”(웃음)



 ◆왜 함께 읽는가=이날 모인 사람들은 2년 정도 꾸준히 독서모임에 참여해왔다.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함께 읽기’를 예찬했다. 건축설계를 하는 김영삼씨는 “독서모임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별다른 취미 없이 일만 하던 직장인이었다.



 “책에서는 원하는 것을 실천에 옮겨야 행복해진다고 말하잖아요. 제 삶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조언을 듣기 시작했죠. 독서모임 이후 밴드를 시작했고, 야구·축구·등산 모임에도 나가고 있어요.”



 컴퓨터 프로그래머 안성호(40)씨는 역사학자로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독서 모임을 위해 배경 지식을 공부하면서 내가 역사에 흥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공무원인 양설아(32)씨는 독서모임으로 ‘힐링’을 한 케이스다. 그는 “『삶의 정도』(그래픽 참조)를 읽으면서 가슴에 품고 있던 힘든 이야기를 사람들과 많이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여러 분야의 책을 다양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어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강수혜(32)씨는 “생각이 한쪽으로 고착 될 수 있었는데, 독서모임에서 문학·사회학·과학·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읽고 토론하게 되니까 통합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며 “강제성이 있는 것도 좋은 점인 것 같다”고 했다.



 한 달에 10~15권의 책을 읽는 천원석씨는 이 모임의 연장자로서 늘 함께 생각할 거리를 준비해온다. 그는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익히게 되고, 깊이 있게 읽는 습관도 들이게 된다. 은퇴 후 독서지도자의 꿈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어떻게 함께 읽을 것인가=‘책만세’는 일반적인 독서 동호회와 달리 글쓰기 모임, 지식 나눔 콘서트, 저자와의 만남, 역사 기행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회원끼리 잦은 스킨십은 이 동호회가 오래갈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5년 넘게 운영자로 활동한 허순정씨가 몇가지 노하우를 제시했다. ▶베스트셀러나 읽기 쉬운 책부터 시작해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책을 골라라 ▶토론할 논제는 미리 공지해서 각자 의견을 정리해 올 시간을 확보해라 ▶토론 방식은 ‘자유토론’으로 해라. 한 권의 책을 다양한 관점에서 읽는 것이 목표이므로 이야기의 소재를 제한하지 말라 ▶책 속의 내용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과제를 던져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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