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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일 제국주의 ‘모순의 결정체’ 태평양전쟁 전범 도조

중앙일보 2012.08.11 00:11 종합 25면 지면보기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호사카 마사야스 저, 정선태 옮김, 페이퍼로드

706쪽, 3만8000원




태평양전쟁 전범 도조 히데키(1884-1948)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1979년에 펴낸 고전으로, 일본인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로 치부됐던 도조 히데키의 삶을 재조명해 일본 제국주의와 도조 연구에 한 획을 그었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는 소수 전범에게 화살을 돌리는 대신 다른 요인에 면죄부를 주는 인식에 반기를 든다. 정치가로서 사상도 이념도 없던 도조가 극히 중요한 시기에 일본을 이끈 게 잘못이라는 기존 해석에 동의하면서도, 그런 해석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보았다. 도조를 키운 ‘역사적 토양’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도조는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 제국주의가 확대시켜 온 모순의 결정체였다.



 도조는 ‘대일본제국’에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4세 때 육군유년학교에 들어가 육사·육군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교과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성실한 노력가였다. 관동군 참모장을 마칠 때 거액의 기밀비를 1엔 단위까지 용처를 밝히고 잔금은 반납할 정도로 공인의식이 투철했다. 장관 시절엔 기운 양말을 신고 다녔다. 그런 그가 히틀러·무솔리니와 함께 인류사에 남는 괴물로 낙인찍혔다. 제국주의 교육이 심어준 철저한 선민의식과 극단적인 정신주의 탓이 컸다.



 도조는 “국민은 회색이다. 지도자가 희다고 말하면 희게 되고 검다고 말하면 검게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사이판 섬이 미군에 함락되자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저력을 보여줄 때다. 벽이 없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부딪쳐야지 벽이 있는 것을 알고 겁을 먹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일국의 지도자가 몽상가처럼 헛소리나 하는 심리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 결과가 가미카제 특공대 같은 무모한 전략과 한국인 등 무수한 양민의 억울한 희생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치군인 도조의 실전 경험은 1937년 중국군과 벌인 단 한차례 전투뿐이었다. 역저답게 풍부한 팩트(사실)들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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