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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군 면제가 한국 축구의 비결?

중앙일보 2012.08.07 00:4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일을 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침몰시켰다. 외신들은 ‘병역 면제가 한국 축구의 비결’이라 해석하는 모양이다. 일본도 “한국만은 피했으면 싶다”는 분위기다. 죽기살기로 덤빌 게 겁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외신의 분석이 마냥 뜬소문은 아니다. 우리 선수들도 라커룸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틀어놓고 함께 울었다. 홍명보 감독도 승부차기 때 간판 키커인 박주영을 뺀 것도 자칫 ‘모나코 박’이란 몰매를 의식한 배려로 보인다.



 군 면제는 절박하고 달콤한 유혹이다. 예비역들은 그 마음 다 안다. 이들 상당수가 군번 앞 네 자리를 비밀번호로, 뒤의 네 자리는 전화번호로 쓰는 현실이다. 군대 기억은 질기고 오래간다. 정부가 아무리 ‘명예로운 군 복무’라 우겨도 병역은 멍에다. 1980년대 대간첩작전 때의 이야기다. 의외로 동원예비군이 무장간첩을 많이 잡았다. 현역들은 “어차피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며 느긋했다. 반면 군기 빠진 예비군들은 일주일쯤 지나면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빨리 잡고 빨리 집에 가자”며 눈에 불을 켰다.



 국방부가 다시 ‘군 가산점 제도’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서울 교사 임용시험의 여성 합격률이 84%가 넘는다며 남성들의 울분을 자극한다. 여성단체들은 “0.1~0.2점 차이로 운명이 엇갈린다”고 거부한다. 국방부는 남녀 간에 증오에 찬 언어로 소모전을 벌이는 걸 은근히 즐긴다. 하지만 군 가산점은 한마디로 꼼수다. 어차피 공무원을 희망하는 예비역은 극히 소수일뿐, 돈 한 푼 안 들이며 생색내려는 속셈이다. 덤으로 얹는 도로통행료·공공시설료 할인 같은 보상책도 한심하다. 해도 너무 한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은 ‘사병 월급 인상’을 약속하고 있다. 마치 더 높은 호가(呼價)를 외치는 경매 분위기다. “그 돈은 누가 내느냐”거나 “군 부재자 표를 노린 포퓰리즘”이란 비난이 자판기처럼 쏟아진다. “성스러운 국방의무를 ‘근로’나 최저임금쯤으로 여기느냐”는 우아한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정반대다. 언제까지 국가주의 아래 2년의 청춘을 헐값으로 차압할 셈인가. 지속불가능하다. 목숨이 둘도 아니고, 청춘이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 과거 대통령들의 상당수가 병역미필이고, 어느 도지사는 군대 안 가려 손가락까지 자른 마당에 설득력이 없다.



 그동안 보수 정권들은 병역의무를 너무 당연시했다. 사병을 ‘장기판의 졸(卒)’로 여긴 느낌이다. 그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사병에게 관심을 기울인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병장 월급을 2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렸고, 복무기간도 줄였다. 그가 유일한 예비역 상병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물론 냉정히 따지면 가장 결정적 원인은 역설적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 때문이었다. 병역 의무의 모순들이 한꺼번에 불거지면서 더 이상 처우개선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사병 월급을 50만원으로 올리면 연간 2조3000억원이 든다며 엄살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용돈을 타 쓰는 ‘보급투쟁’은 말이 안 된다. 최전선인 서해 5도 해병들의 왕복 뱃삯은 한 달 월급인 10만원이다. 주소지가 인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인천시 의회가 “해병들도 인천시민과 동등하게 절반으로 깎아 달라”고 난리일까. 사병 처우개선은 사치가 아니다. 반값-무상 시리즈보다 훨씬 명분이 앞서고, 최소한의 예의다. 이런 데 뿔 낼 납세자는 없다.



 역사상 처음 징병제를 실시한 프랑스는 시민권으로 보답했다. 유성룡의 면천법(免賤法)은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었다. 왜적과 싸우면 양반으로 올려주니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요즘 젊은 세대의 의식은 티아라 파문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의지의 차이’에 곧바로 ‘때로는 의지만으로 무리’라고 반박한다. 합리적 보상 없이 언제까지 의지(애국심)만 강조할 수 없다.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어야 강한 군대가 된다. 내일 홍명보호가 브라질과 운명의 승부를 펼친다. 부디 축구 대표팀이 ‘이등병의 편지’의 비장한 심정으로 깔끔하게 군 면제를 마무리 지었으면 한다. 이왕이면 화끈한 금메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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