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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펜싱에 대한 불온한 단상

중앙일보 2012.08.07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올림픽이 인류 평화와 화합의 제전임을 누가 모를까만, 앳되지만 비장한 각오로 경기장에 들어서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점잖은 상식은 콩닥거리는 심장박동에 그만 묻혀버리고 만다. 제국 열강 틈에 끼여 눈치 보며 살아온 주눅 든 세월이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된 까닭인지 패하면 분하고 이기면 가슴 후련한 우승열패의 원초적 감정을 버릴 수 없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지막 날, 황영조가 일본의 고이치 선수를 따돌리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 필자는 정신 나간 짐승처럼 괴성을 질러 댔다. 새벽녘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 숙소에서였는데, 더러 불이 켜진 방에서는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열대야에 잠을 설치느니 애국이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맥주캔을 들고 TV 앞에 앉았다. 그런데 이건 웬 날벼락인가. 한국 낭자 신아람의 ‘멈춰버린 1초’는 오랫동안 무장해제 상태에 있었던 약소국의 상처를 건드리더니 급기야 자제할 수 없는 분노로 피어올랐다. 아니, 저런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파렴치하고 오만 방자한,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이라니! 교양에 의해 억제된 욕설과 비속어(卑俗語)들이 뭉게뭉게 모이기 시작했던 거다.



 스위치는 눌러졌건만 그건 가지 않는 시계였다. 아니 거꾸로 가는 시계였다. 스타 워즈에나 나올 만한 그 장면, 네 차례 공격을 무시간(無時間)으로 산정한 그 계측은 영국이 세계에 선포한 그리니치 표준시간이었다. 거꾸로 가는, 아니 가지 않는 이 시간 개념을 내로라하는 국제심판들과 국제펜싱연맹이 신기루처럼 신봉했으니 어쩌랴, 문명표준의 후예들이 그렇다면 그러려니 할 수밖에. 분통이 폭발하자 불온한 발상이 걷잡을 수 없이 몰려왔다.



 아무리 인류화합 운운하는 올림픽이라도 유럽이 타 인종에 결코 양보하지 않으려는 종목이 있는 듯이 보인다. 승마와 펜싱. 이 종목들엔 유럽이 현대문명의 종주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역사적 원동력과 귀족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부영화의 주연 존 웨인이 야생마를 타고 텍사스 평원을 달리는 것은 그냥 질주지 승마가 아니다. 근위 기마병을 앞세워 정벌에 나섰던 전장의 기상을 궁정과 장원 뜰에서 재현하며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 승마에 숨겨진 귀족들의 호사취향이다. 펜싱 역시 귀족문화의 꽃이었다. 중세의 유럽지도는 종교전쟁과 종족전쟁으로 수십 차례 바뀌었는데, 승패는 날씬한 칼과 갑옷으로 중무장한 귀족 출신 기사(騎士)들의 몫이었다. 병사들이 기진하면 양쪽의 기사들이 나서 일합을 벌였다. 종족의 우월성과 왕권의 계보는 기사들의 최종병기인 칼로 판가름 났다. 평화시대인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검법은 귀족계급의 필수교양으로 등록되었는데, 영국에서는 오늘날에도 국가 명예를 드높인 귀족들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할 정도로 멸사봉공 정신과 신사의 품격을 높이 사고 있다.



 그런데 몸통을 찌르는 플뢰레에서 최병철이 레드카드를 세 차례나 받은 것은 전진과 후퇴만으로 이뤄진 서양의 검법을 조선 무예가 흔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무사(武士)는 창, 칼, 화살, 도끼를 종합적으로 구사하는 ‘무예 24반’을 통달해야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1709년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에는 무사들의 동작이 전후, 좌우, 상하를 막론하고 변화무쌍하다. 그러니 온몸을 흔들면서 돌진해오는 조선의 검객을 레드카드로나 황급히 막아야 했던 것이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독일의 하이데만이 조선 여검객을 찌를 때까지 ‘마지막 1초’가 멈춰서야 했던 이유다.



 그러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서양의 단조로운 검법이 동양의 신검에 의해 제압당할 날도 머지않은 듯이 보인다. 중국은 검법을 무술(武術)로 불렀고, 일본은 무도(武道)라 했는데, 조선은 그것을 모두 합친 종합예술 ‘무예(武藝)’라고 했다. 중국 무협영화 ‘와호장룡’에서 보았듯이 수면(水面)을 박차 오르고 대나무 가지에 사뿐히 내려앉는 무중량의 발놀림과, 일본 영화 ‘7인의 사무라이’가 보여준 현란하고 절제된 손놀림에다 쌍검, 삼지창, 언월도를 동시에 구사하는 조선의 복합예술적 검법에 펜싱 종주국이 당황한 나머지 저질렀던 실수라고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마치 유럽이 의기양양하게 채택한 양궁에서 조선 신궁(神弓)이 서양 궁사들을 쩔쩔매게 만들 듯이 말이다. 봐라, 조선 검객들을 괜히 건드려 금 2, 은 1, 동 3개를 내주지 않았는가. 펜싱경기장이 극동의 작은 나라 국기로 뒤덮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거다. 여하튼 대한체육회는 대응력 미숙, 외교력 부재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게 생겼다.



 그러나, 동메달도 좋으니 한 개만이라도 따서 노메달의 서러움에서 벗어나기를 학수고대하는 80여 개국 힘없는 국민을 생각하면, 오심과 편파 판정에 광분해서 이렇게까지 보복논리를 열변하는 것은 왠지 천박하고 불온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더위 먹은 탓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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