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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늘 최대, 최고만 본다 최소 못 지켜 고통받는데 …

중앙일보 2012.08.07 00:29 종합 24면 지면보기
전경린은 공간에서 영감을 받는 소설가다. 북한 땅과 인접한 파주에서 머문 시간이 고여 소설 『최소한의 사랑』이 나왔다고 했다. ‘살인도 할 추위’를 겪으며 그는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소한’의 의미는 중층적이다. 정말 작은 것을 가리키는 것인 동시에 꼭 지켜야 하는 것, 혹은 잃어서는 안 되는 무엇을 뜻한다.

2년 만의 장편 『최소한의 사랑』 낸 소설가 전경린



소설가 전경린(50)이 2년 만에 내놓은 장편 『최소한의 사랑』(웅진지식하우스)은 이런 ‘최소한’에 대한 여러 겹의 이야기다.



 전씨는 “최소한의 사랑은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선의(善意)다. 우리 시대에는 그런 것이 사라져 버렸다. 결핍이 가득한 시대에 ‘너의 최소한은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희수에게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난 새엄마가 마지막 부탁을 남긴다. 재혼한 뒤 버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딸, 희수에게는 의붓여동생인 유란을 찾아 작은 유산과 미안한 마음을 전해달라는 것이다.



 희수에게 유란은 잊고 싶은 과거다. 어린 시절 새엄마가 데리고 온 유란을 오빠와 공모해 성당에 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 새엄마와 유란은 생이별을 한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을 버린 희수는 이후 ‘껍데기처럼 우두커니 앉은 아이’가 돼 버린다.



 -희수는 ‘아무것도 붙들지 않는’ 사람이다. 외도를 하는 남편도, 호주로 떠나겠다는 딸도 그냥 지켜본다. 그런 희수가 의붓여동생인 유란을 찾아 나선다.



 “유란을 버린 뒤 희수는 무감각증과 무력증에 빠진다. 공모자인 오빠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벽을 쌓는다. 유란을 유기하며 자기상실과 소외에 빠진 셈이다. 유란을 찾는 게 자기를 회복하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유란의 흔적을 찾아 희수가 도착한 접경지역은 추운 땅이다. 그곳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 마지노선의 동의어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최소한의 공간도 가질 수 없었던 유란이 내몰린 곳이다.



 -왜 남쪽이 아니라 북쪽인가.



 “미해결 상태로 모든 것이 얼어붙은 이미지를 상정했다. 접경지대는 공간적 억압과 결핍이 있는 곳으로 어떤 문제이든 방치된 공간이다.”



 작가는 경기도 파주를 모델로 한 그 접경지역의 추위, ‘칼칼하고 광활한 곳의 순수한 추위, 살인도 할 추위’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유일한 분단공간인 접경지대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38도선의 엄혹한 추위와 38도에 비유되는 펄펄 끓는 유란의 사랑이 대조적이다.



 “36도는 평화롭고 역동적인 상태다. 반면 38은 팽팽한 숫자다. 38도라는 과열성은 자기 몸을 다치게 하는 온도다. 과도하게 사랑의 열정을 달궈버리는 유란의 태도는 버림받은 상처 때문이다. 그래서 대들듯이 달려드는 거다.”



 작가는 사랑의 과잉에 대한 생각도 펼쳐놨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과잉 애정은 자식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부모가 사랑을 최소한으로 절제해야 자식이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생명력이 커진다. 자기애도 마찬가지다. 자기애가 넘치면 거기에 파묻혀서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단추가 의미 있는 소재로 등장한다. ‘최소한’을 보여주는 장치인가.



 “단추는 아주 작은 것이다. 하지만 외도 상대인 여자가 잘라낸 단추를 희수에게 ‘그냥 달라’고 말하는 남편의 태도는 폭력적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것이다. 희수는 남편이 외도의 상대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통념이나 생존 법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희수가 틀린 것이지만, 사랑이 떠났으니 그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희수가 오히려 사람을 존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상처는 최소한의 것을 지키지 못해서 생긴다”는 ‘세상만사 상담소’ 소장의 이야기는 작가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맞다.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늘 최대한의 것, 최고의 것만 본다. 최소한도 지키기 어려운 개인이 최대한의 욕망에 빠지다 보니 내면이 붕괴하고 황폐해지는 것이다. 최소한의 것을 생각하고, 자기의 바닥을 딛는 게 절실하다. 그래야 자유로운 존재로 충만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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