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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짓' 국토순례 명단, 국회의원 이름 버젓이

중앙일보 2012.08.03 00:07 종합 18면 지면보기
본지가 입수한 한국소년탐험대 발대식 안내문. 내빈 명단에 국회의원, 전 총리, 전 장관 등 유명인사 이름이 기록돼 있다. 구의원 등 일부는 참석했으나 대다수는 “전혀 알지 못하는 행사”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독립성을 키워주려고 국토대장정에 보냈는데 하마터면 우리 아이를 잃을 뻔했어요.”

화려한 가짜 내빈 명단 … 학부모들 낚였다
“국회의원, 전 총리, 전 장관, 구청장, 변호사 … 이분들이 우리 국토순례단 도와줍니다”



 2일 서울 상계동 자택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주부 김모(42)씨는 한국소년탐험대 대장 강모(55)씨 얘기가 나오자 격분했다. 강씨가 주최한 ‘2012 국토대장정(지난달 26일 독도~8월 12일 인천 도착 일정)’에 김씨는 둘째 딸(11)을 참가시켰다. 그러나 딸에게 돌아온 건 ‘텐트 봉’ 매질이었다. 종아리·허벅지·팔 등을 맞는 체벌을 당했다. 김씨는 “(국토대장정 이후) 아이가 밖에 나가기를 무서워한다. 심리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추행까지 당한 다른 아이들은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이런 캠프에 보내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라고 아이에게 사죄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전과 21범이 이런 단체를 버젓이 운영할 수 있는 겁니까. 앞으로 초·중·고교생을 상대로 국토순례를 하는 단체 운영자는 무조건 성범죄를 포함한 전과기록을 확인해 제2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김씨는 딸을 보내기 전에 강씨에게 직접 “같이 가는 스태프 가운데 성범죄 전력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강씨는 “내가 이 행사를 30년째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못 믿으면 보내지 마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국토대장정 시작 닷새 만에 구타·성추행 등의 문제가 터졌다.



 강씨는 이전에 폭행 등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김씨를 비롯한 학부모들이 그에게 아이들을 보낸 배경은 뭘까. 김씨는 “홈페이지에 강씨가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과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고 발대식 내빈 명단에도 유명 정치인이 다수 포함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빈을 소개할 때도 ‘우리 탐험대를 도와주는 분’이라는 식으로 소개했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달 26일 발대식 때 배포된 안내문을 확인했더니 강영훈 전 국무총리, 진영 새누리당 의원, 오영식 민주통합당 의원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정치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전혀 기억 나지 않는 행사”라고 입을 모았다. 강씨는 또 MBC 등을 후원사라고 밝혔지만 MBC 관계자는 “후원한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동해해양경찰서는 이날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초·중·고교생 56명 중 6명의 청소년을 폭행 또는 성추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위반)로 강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달 28일 독도에서 울릉도로 향하던 여객선 내에서 A양(14)과 B양(17)을 성추행하고 지난달 30일 울릉도 성인봉을 등반하던 중 C양(15)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혐의다.



 강씨는 앞서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국토대장정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인데 아이들의 작은 응석을 다 받아주면 누가 그 아이를 가르치느냐”고 말했다. 폭행 의혹에 대해서도 “(산행할 때) 할 수 있는 아이인데 안 하는 아이를 격려해주는 게 내 임무다. 새끼 손가락 굵기의 나뭇가지로 자극을 준 것뿐이다”라고 강변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학생의 사진을 보여주며 “성추행은 절대 하지 않았다. 성추행 당한 아이들이 이렇게 웃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강씨는 학생들이 ‘개밥’이라 부른 식사에 대해서도 “아이들 삼식삼찬을 다 주면 안 먹는다. 그래서 배고프게 해야 한다”며 “최소한 두 끼 이상 잘된 밥을 먹였다”고 주장했다.



 ◆“제도적 장치 없어”=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관리·감독할 법적 근거는 없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2006년 3월 ‘청소년수련활동 인증제’를 도입했지만 이 또한 강제성이 없다. 여성가족부 청소년활동 진흥과 한도희 위원은 “국토대장정은 마치 동아리처럼 등록 없이도 구성이 가능하다”며 “법 규정이 없어 제재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알림=본지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탐험대의 실명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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