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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올림픽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중앙일보 2012.08.03 00:00 종합 28면 지면보기
채인택
논설위원
순진한 생각은 그만하자. 지금 열리고 있는 런던 올림픽은 숭고한 종교 행사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올림픽은 총성 없는 전쟁과 다름없다. 총칼 대신 육체와 훈련된 감각으로 전투를 벌이고, 피 대신 땀을 흘릴 뿐이다. 대표선수는 군인을 대신한다. 국기를 달고 유니폼을 입고 나라의 이름으로 출전한다. 국민이 이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다. 국가 정체성 회복의 시기다. 이렇게 가열된 민족주의는 때론 화산처럼 분출된다.



 올림픽이 전쟁인 또 다른 이유는 국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경제력뿐 아니라 선수와 지도자의 의지와 집념에 국민의 성원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국력 말이다. 역대 올림픽 메달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강대국 미국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929개의 금메달을 땄다. 총 메달 수는 2296개다. 옛 라이벌 러시아는 과거 제정·소련 시절을 합쳐 504개의 금메달과 1333개의 메달을 가져갔다. 독일이 동독을 합쳐 390개의 금메달과 1260개의 메달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제는 1위를 다투는 중국은 역대 163개의 금메달 등 385개의 메달에 그치고 있다. 207개의 금메달과 715개의 메달을 딴 영국이나 191개의 637개를 얻은 프랑스에 한참 못 미친다. 중국의 메달 수에는 고난의 역사를 겪다 뒤늦게 개혁에 나선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국은 68개의 금메달과 215개의 메달로 중국·일본(금 123개, 총 메달 360개)에 이어 아시아 3위다.



 올림픽 메달 획득은 한 나라의 국력을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계기다. 하지만 그리 녹록지 않다.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꾸려진 204개 나라 가운데 여름과 겨울 올림픽을 통틀어 금메달을 하나라도 딴 나라는 84개국에 불과하다. 80개국은 아직 단 하나의 메달도 얻지 못했다. 대부분 작고 가난한 나라다. 런던 올림픽 축구예선에서 한국과 무승부를 기록한 가봉도 노메달 국가다.



 메달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2011년 기준 1인당 GDP가 2만3000달러가 넘는 중동 산유국 바레인은 모로코 출신의 라시드 람지를 스카우트해 금메달을 노렸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남자육상 1500m에서 1위로 골인했으나 도핑 테스트에 걸려 퇴출당했다. 메달을 따려면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치르는 스포츠 정신도 필요하다. 이 스포츠 정신도 국력의 일부다.



 세계 9위의 경제대국 인도의 올림픽 금메달 따기 노력은 눈물겹다. 식민지 시절인 1900년부터 올림픽에 참가해 8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모두 단체종목인 하키에서였다. 그나마 1980년 모스크바 이후 2008년 베이징까지 금 맛을 보지 못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세계 1위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의 회장으로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인도인 락슈미 미탈이 선수 양성과 포상금으로 쓰라고 기부금 900만 달러를 보내왔을까. 이 돈으로 10명의 유망주를 지원한 인도는 2008년 28년 만에 다시 금 맛(사격)을 볼 수 있었다. 올림픽 메달에 나라의 명예가 걸렸다는 사실은 이처럼 해외동포들이 더 잘 안다.



 올림픽이 전쟁과 다른 점은 한 나라의 힘은 물론 국격(國格)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빛깔 좋은 메달을 땄더라도 돈과 승부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스포츠맨십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선수는 자신은 물론 나라 망신까지도 함께 시킨다. 반면 존경심이 저절로 드는 선수는 자국의 명예를 동시에 높인다. 지난달 31일 한국의 김재범 선수와 유도 81㎏급 결승에서 맞붙은 독일의 올레 비쇼프는 시합에서 지고도 금메달 딴 것 못지않은 환호를 받았다. 준결승에선 부상당한 미국 선수에게 큰절을 하며 사과하고 위로하더니 결승에선 우승한 김 선수를 포옹하며 축하했다. 그의 트위터에 들어가 봤더니 한국인들의 격려 글이 쇄도하고 있다. 1일 우승 직후 스승인 코치에게 큰절을 올린 유도 90㎏급 송대남 선수는 현지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페어플레이를 하고 상대 선수를 존중하며 스승을 존경하는 정신에는 동서양도, 국경도 없다.



 올림픽이 전쟁과 다른 결정적인 점은 대결이 끝나면 모두 하나가 된다는 점이다. 올림픽이 4년마다 우리의 여름밤을 설치게 하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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