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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환자를 스스로 걷게 하라, 생각만으로!

온라인 중앙일보 2012.07.29 05:16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은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에게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있다? ①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모든 것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2009년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는 주인공의 생각이 아바타(분신) 로봇을 통해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뇌를 컴퓨터나 로봇 같은 기계장치에 연결해 손을 사용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제어하는 기술은 뇌-기계 인터페이스(BMI·brain-machine interface)라고 한다.

BMI에는 세 가지 접근방법이 있다.



첫째는 뇌의 활동 상태에 따라 주파수가 다르게 발생하는 뇌파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먼저 머리에 띠처럼 두른 장치로 뇌파를 모은다. 이 뇌파를 컴퓨터로 보내면 컴퓨터가 뇌파를 분석해 적절한 반응을 일으킨다. 컴퓨터가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 스스로 작동하는 셈이다.



둘째는 특정 부위 신경세포(뉴런)의 전기적 신호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뇌의 특정 부위에 미세전극이나 반도체 칩을 심어 뉴런의 신호를 포착한다.

셋째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촬영(fMRI) 장치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fMRI는 어떤 생각을 할 때 뇌 안에서 피가 몰리는 영역의 영상을 보여준다. 사람을 fMRI 장치에 눕혀놓고 뇌의 영상을 촬영하여 이 자료로 로봇을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BMI 분야에선 초창기부터 첫째, 둘째 방법이 경쟁적으로 연구 성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1998년 3월 최초의 BMI 장치가 선보였다. 미국 신경과학자 필립 케네디가 만든 이 BMI 장치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목 아래 부분이 완전 마비된 환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이식되었다. 그는 눈꺼풀을 깜박거려 겨우 자신의 뜻을 나타낼 뿐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였다. 케네디의 BMI 장치에는 미세전극이 한 개밖에 없었다. 사람 뇌에는 운동 제어에 관련된 신경세포가 수백만 개 이상 있으므로 한 개의 전극으로 신호를 포착해 몸의 일부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엉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케네디와 환자의 끈질긴 노력 끝에 생각하는 것만으로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케네디는 사람 뇌에 이식된 미세전극이 뉴런의 신호를 받아 컴퓨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손 대신 생각만으로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BMI 실험에 최초로 성공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뇌-기계 인터페이스 BMI 기술

99년 2월 독일 신경과학자 닐스 비르바우머는 목이 완전 마비된 환자의 두피에 전자장치를 두르고 뇌파를 활용하여 생각만으로 1분에 두 자꼴로 타자를 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해 6월엔 브라질 출신의 미국 신경과학자 미겔 니코렐리스와 동료인 존 채핀은 케네디의 환자가 컴퓨터 커서를 움직이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쥐가 로봇 팔을 조종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를 내놓았다. 이어서 2000년 10월 부엉이원숭이를 상대로 실시한 BMI 실험에 성공했다. 원숭이 뇌에 머리카락 굵기의 가느다란 탐침 96개를 꽂고 원숭이가 팔을 움직일 때 뇌 신호를 포착하여 이 신호로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또 원숭이 뉴런의 신호를 인터넷으로 약 1000㎞ 떨어진 장소로 보내서 로봇 팔을 움직이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BMI 기술로 멀리 떨어진 곳의 기계장치를 원격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2003년 6월 니코렐리스와 채핀은 붉은털원숭이의 뇌에 700개의 미세전극을 이식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2004년 이들은 32개의 전극으로 사람 뇌의 활동을 분석하여 신체 마비 환자들에게 도움되는 BMI 기술 연구에 착수했다. 그해 9월 미국 신경과학자 존 도너휴는 뇌에 이식하는 반도체 칩인 브레인게이트(BrainGate)를 개발했다. 사람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전극 100개로 구성된 이 장치는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25세 청년의 운동피질에 1㎜ 깊이로 심어졌다. 9개월이 지나서 이 환자는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전자우편을 보내고 게임도 즐기고, 텔레비전을 켜서 채널을 바꾸거나 볼륨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또 자신의 로봇 팔, 곧 의수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도너휴의 브레인게이트는 2006년 7월 영국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표지 기사로 실려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8년 5월 미국 신경과학자 앤드루 슈워츠는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여 음식을 집어먹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원숭이 두 마리 뇌의 운동피질에 머리카락 굵기의 탐침을 꽂고 이것으로 측정한 신경신호를 컴퓨터로 보내서 로봇 팔을 움직여 꼬챙이에 꽂혀 있는 과일 조각을 뽑아 자기 입으로 집어넣게 만들었다. 전신마비 환자들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혼자서 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는 기술도 실현되었다. 2009년 5월 스페인에서, 6월 일본에서 각각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휠체어가 개발되었다. 스페인의 휠체어 사용자는 16개의 전극이 달린 두건을 쓰는 반면에 일본의 것은 5개의 전극이 달린 두건을 쓴다. 두건의 뇌파 측정 장치는 전신마비 환자가 생각을 할 때 뇌파의 변화를 포착한다. 이 신호를 받은 컴퓨터는 환자가 어떤 동작을 생각하는지 판단해 휠체어의 모터를 작동시킨다.



BMI 기술은 필립 케네디처럼 뉴런의 신호를 이용하는 방법과 닐스 비르바우머처럼 뇌파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양분되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12년 7월 제3의 BMI 방법인 fMRI 사용 기술이 처음으로 실험에 성공했다. 이스라엘·프랑스의 공동 연구진은 먼저 이스라엘의 fMRI 장치에 누워 있는 대학생의 뇌 활동을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 로봇 작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통해 프랑스에 있는 아이처럼 생긴 로봇에 전달되어 대학생의 생각만으로 이 로봇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편 미겔 니코렐리스가 주도하는 다시 걷기 프로젝트(Walk Again Project)는 전신마비 환자에게 온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주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환자에게는 전신을 감싸는 외골격(exoskeleton)을 입힌다. 이는 일종의 입는 로봇이다. BMI 기술로 전신 외골격의 동작을 제어하게 되면 전신마비 환자들도 다시 걷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BMI 기술은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뇌파를 이용하는 BMI 기술이 비디오 게임, 골프 같은 스포츠, 수학 교육, 신경마케팅 분야에서 활용되는 추세다.



2050년 무선텔레파시 시대 도래하나

BMI 전문가들은 2020년께에는 비행기 조종사들이 손 대신 생각만으로 계기를 움직여 비행기를 조종하게 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전망한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일독해야 할 보고서 목록에 포함된 2025년 세계적 추세(Global Trends 2025)에도 이와 유사한 전망이 나온다. 2025년 미국의 국가 경쟁력에 미칠 효과가 막대할 것으로 여겨지는 6대 기술의 하나로 선정된 서비스 로봇 분야를 보자. 2020년 군사용 로봇에 BMI 기술이 적용되어 생각신호로 조종되는 무인차량이 군사 작전에 투입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를테면 병사가 타지 않는 BMI 탱크를 사령부에 앉아서 생각만으로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코렐리스 역시 이와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2011년 3월 펴낸 저서 『경계를 넘어서(Beyond Boundaries)』에서 니코렐리스는 “앞으로 10~20년 안에 사람의 뇌와 각종 기계장치가 연결된 네트워크가 실현될 것”이라며 인류는 생각만으로 제어되는 자신의 아바타를 이용하여 접근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환경, 예컨대 원자력발전소나 심해, 우주공간 또는 사람의 혈관 안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뇌-기계-뇌 인터페이스(BMBI) 기술이 실현되어야 한다. BMBI는 사람 뇌에서 기계로 신호가 한쪽 방향으로만 전달되는 기술과는 달리 사람 뇌와 기계 사이에 양쪽 방향으로 정보가 교환된다.



니코렐리스는 10~20년 안에 BMBI가 실현되면 듣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붙잡지도,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수백만 명에게 신경기능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니코렐리스는 이 책에서 뇌-기계-뇌 인터페이스 기술이 완벽하게 실현되면 인류는 궁극적으로 몸에 의해 뇌에 부과된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에 살게 될 것이며 결국 사람 뇌를 몸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놀라운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뇌가 몸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 사람의 뇌끼리 서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곧 ‘뇌 네트(brain-net)’가 구축되어 생각만으로 소통하는 뇌-뇌 인터페이스(brain-brain interface·BBI)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BBI 기술이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뇌 이식 기술이 발전해, 가령 뉴런 안에서 뇌의 활동을 직접 관찰하거나 측정하는 장치가 개발돼야 한다. 이러한 장치는 신경세포 활동의 정보를 무선신호로 바꾸어 뇌 밖으로 송신한다. 거꾸로 무선신호를 신경정보로 변환하는 수신장치를 뇌에 삽입할 수도 있다. 사람 뇌에 무선 송수신기가 함께 설치되면 뇌에서 뇌로 직접 정보 전달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BBI 통신방식은 무선 텔레파시(radiotelepathy)라고도 불린다.



미국 이론물리학자인 프리먼 다이슨이나 영국 로봇공학자인 케빈 워릭이 일찌감치 꿈꾼 대로 2050년께 무선텔레파시 시대가 실현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97년 펴낸 『상상의 세계(Imagined Worlds)』에서 다이슨은 21세기 후반 인류가 텔레파시 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2002년 펴낸 『나는 사이보그(I, Cyborg)』에서 워릭은 2050년 지구를 지배하는 사이보그들이 생각을 신호로 보내 의사소통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뇌-뇌 인터페이스 장치를 뇌에 이식한 사람들이 전 세계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접속되면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도 오로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게 될지 모른다. 그러면 휴대전화나 TV는 물론 언어까지 쓸모 없어질 것인지 궁금하다.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엔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으며 1990년대 초부터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사람과 컴퓨터?(92년)를 시작으로 ?『지식의 대융합』?『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출간했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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