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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3년간 질문도못해" 무서운 IOC위계질서

온라인 중앙일보 2012.07.29 03:11
26일 런던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로게 위원장(왼쪽)과 바흐 부위원장이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로게 IOC 위원장 후임 놓고 물밑 신경전

지난 26일 런던의 고급 호텔 그로스브너 하우스의 빅토리아룸. 그곳에선 이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려 신임 부위원장 및 집행위원 선출 투표를 했다. 의례적인 선거가 아니었다. ‘지는 해’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을 대신해 ‘새로운 권력’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이 부상할 가능성을 강력히 상징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바흐는 진지한 얼굴로 투표 결과를 메모하고, 결과가 나올 때마다 회의장 오른편 단상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의 로게 위원장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포커 페이스’로 유명한 로게 위원장은 바흐의 귓속말에 미소를 짓거나 심각한 얼굴을 했다. 바흐 부위원장은 때론 로게 위원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기도 했다. 로게와 바흐의 친분이 100명 넘는 동료 IOC 위원들 앞에 과시되고, 바흐는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내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제125차 IOC 총회를 마지막으로 로게 위원장은 12년 임기를 마친다. 공석이 될 IOC 대권을 놓고 이미 막전막후 열전이 치열하다.



그래서 이번 런던 올림픽은 로게 위원장에게 아주 특별하다. 국제 스포츠계의 황제인 IOC 위원장으로 맞는 마지막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산(legacy)’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런던 올림픽을 맞아 한국에선 중앙일보에 단독 기고한 칼럼의 키워드도 ‘런던의 올림픽 유산’이었다. 1년 정도 임기를 남긴 그에겐 자신만의 IOC 유산을 남기는 게 중요한 과제다. 그 유산을 잘 이어갈 후계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데는 IOC 안팎에서 별 이견이 없다.



IOC 대권을 잡으려면 107명 위원(7월 현재)의 비밀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 위원들은 출신 대륙, 출신 종목 등으로 이해가 갈리며 여러 파벌이 존재한다. 앞에선 미소를 짓지만 뒤론 ‘반대’ 버튼을 누르는 게 다반사다. 배반과 협력의 스토리가 가득하다.



런던의 그로스브너 하우스의 빅토리아룸은 뜨거운 신경전의 일면이 드러나는 곳이다. 이곳에선 21~22일 개최된 IOC 집행위원회, 24~26일 개최된 124차 IOC 총회가 열렸다. 집행위는 IOC의 핵심 정책결정기구로, IOC 임원 선출, 개최도시 선정 및 종목 퇴출, 재정 안전성 확보 등 살림살이를 관장한다. IOC의 심장부다. 위원장, 부위원장단(4명),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어느 방송국에 중계권을 줄지,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으로 유지시킬지, 누구를 신임 IOC 위원으로 받아들일지 여부가 모두 집행위에 달렸다. 물론 핵심 안건은 IOC 총회의 비밀투표를 거친다. 그러나 집행위의 결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 총회장 인근에서 만난 한 아시아 지역 IOC 위원은 익명을 요구하며 “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되면 거의 다 결정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IOC를 20년 넘게 취재해 온 한 기자는 익명을 전제로 “IOC엔 위계질서가 철저하다. 신임 IOC 위원은 3년간 총회에서 질문도 삼가는 게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26일(현지시간) 집행위 구성원 15명 중 3분의1인 5명이 바뀌었다. IOC의 내각인 집행위가 대폭 물갈이된 것이며 내년 IOC 대선 판도를 결정할 세력에 중요한 변화가 있던 셈이다. 이날 IOC 사상 최초로 여성 위원이 3명으로 늘어났다.



휴식 시간에 총회장 밖에서 모나코 IOC 위원인 알베르 2세 국왕, 프랑스 측 장 클로드 킬리 위원이 친밀하게 대화하고, 집행위 부위원장에 새로 선출된 여성 위원인 나왈 엘 무타와켈 모로코 위원을 동료 여성 위원인 스웨덴의 구닐라 린드베리 위원이 축하하며 포옹하는 모습도 보였다. 무타와켈 부위원장은 총회 후 기자에게 “오늘은 IOC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일부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IOC 권력이 여성과 다른 소수자들에게도 공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무타와켈 위원이 언급한 ‘일부’는 유럽, 그리고 남성 위원들이다. 역대 위원장에서 그 점이 드러난다. 1894년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IOC를 창설한 후 지금까지 8명 위원장 중 미국인 1명 외엔 모두 유럽 출신이다. 로게 위원장도 벨기에 출신이다. IOC 위원도 유럽에 치중돼 있다. 26일 총회에서 신임 위원으로 선출된 다케다 쓰네카쓰 일본 IOC 위원은 기자에게 “IOC 내 아시아의 존재감을 높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쿠베르탱이 오륜기를 만들 땐 각 대륙을 상징하는 의미로 같은 크기, 다른 색상의 원을 배치했다지만 이는 이상일 뿐이다. 미국 IOC 전문기자 앨런 에이브러햄슨은 “각 대륙 간 불균형은 심각하다”며 “미국 역시 집행위에 이름을 올린 위원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은 IOC 내 미국 존재감이 별로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2013년 ‘IOC 대권전’의 관전 포인트는 ‘유럽이 기득권을 사수할 것인가’이다. 7월 현재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독일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 ▶응 세르 미양 싱가포르 IOC 부위원장 ▶리처드 캐리온 푸에르토리코 IOC 위원 등 3명이다.



선두 주자는 바흐 부위원장이다. 26일 총회에서 현직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스포트라이트를 잔뜩 받은 바흐는 자신감이 넘친다. 한국 홍보관인 코리아하우스도 방문해 “평창에 행운을 빈다”며 손을 흔드는 여유도 보였다. IOC를 오래 취재해온 한 영국인 기자는 “바흐가 선두 주자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는 벌써 위원장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옷을 입는다”고 말했다. 다만 2018년 겨울 올림픽 유치전에서 독일 뮌헨이 평창에 참패한 것이 바흐에겐 타격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바흐의 독주를 싱가포르의 응 세르 미양 부위원장이 나름 막고 있다. 그가 로게 위원장의 신임을 얻게 된 계기는 2010년 7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여름 유스올림픽이다. 로게가 주도해 만든 청소년 올림픽인 ‘유스 올림픽’의 첫 회인 2010년 싱가포르 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부족한 게 흠이다.

캐리온은 최근 몇 개월 사이 부쩍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방송ㆍ뉴미디어 중계권 협상을 담당하며 IOC의 살림을 넉넉히 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밴쿠버 겨울올림픽과 런던 올림픽 방송 중계권 협상을 이끌며 30억 달러(약 2조8200억원)를 벌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보다 40%나 늘어난 금액이다.



한편 집행위에 IOC 역사상 최다인 3명의 여성이 진출하면서 일각에선 여성 IOC 위원장에 대한 얘기가 고개를 든다.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다. IOC의 평창 조정위원장이기도 한 구닐라 린드베리 집행위원은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런던=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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