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하라 처음 횡단한 車 만든 아이디어 뱅크

온라인 중앙일보 2012.07.29 01:46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자동차의 원조는 1769년 프랑스인 조제프 퀴뇨가 발명한 증기동력 3륜 수송차로 전해진다. 독일인 카를 벤츠는 1885년 세계 최초로 휘발유형 내연기관을 개발했다. ‘자동차의 왕’으로 불린 헨리 포드는 1920년대부터 자동차의 상용화와 대중화를 이끈 인물이다. 현재 세계 자동차 생산국 순위는 일본에 이어 미국, 중국, 독일, 한국, 프랑스의 순이다. 지금은 자동차산업이 다소 위축됐지만 프랑스는 자동차 개발 초기 많은 발명가의 노력으로 한때 최첨단 자동차 기술을 보유한 적이 있었다. 평생을 자동차 기술개발에 바친 앙드레 시트로앵(사진)도 이들 중 한 명이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자동차산업의 혁명가 앙드레 시트로앵

여섯 살 때 사업 실패한 아버지가 자살

시트로앵은 187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네덜란드 유대인으로 보석상을 했다. 어머니는 폴란드 유대인이다. 시트로앵이란 성은 가문의 조상이 네덜란드에서 청과물 장사를 할 때 쓰던 성을 프랑스식으로 바꾼 것이다. 프랑스어 시트롱(Citron)은 레몬을 뜻한다.



시트로앵이 여섯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자살했다. 다이아몬드 사업이 실패해 파산하자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시트로앵은 빈한한 소년시절을 보냈지만 공부를 잘했다. 고교 졸업 후 프랑스 최고 이공계대학 ‘에콜 폴리테크닉(EP)’을 졸업했다. 그는 에펠탑을 설계해 건립한 귀스타브 에펠을 존경했다. 졸업 후 ‘모르’란 자동차회사에 취직했다. 기술부장으로 일하면서 변속기의 베어링 배열 방식을 개선해 소음을 줄이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이때 미국 미시간주 포드자동차 공장의 대량생산체계도 둘러봤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입대해 포병부대 장교로 복무했다. 제대 후 대출을 받아 모르사를 인수해 1919년 자신의 이름을 딴 시트로앵사와 합쳤다. 그해 첫 모델인 Type A를 선보였다. 당시 프랑스엔 르노와 푸조가 자동차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후발 주자로서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시트로앵은 신기술 개발에 전념했다. ‘세계 최초’ 수식어가 붙은 기술혁신을 이어갔다. 27년 신차 B2로 사하라 사막을 세계 최초로 횡단해 이 신생 자동차사를 세계에 알렸다. 29년 하루 400대를 생산하는 세계 2위의 자동차사로 급성장했다. 세계 최초의 애프터서비스 체계도 만들었다. 33년 디젤 엔진차 로잘리를 최초로 상용화했다. 다음해엔 역시 세계 최초로 전륜구동(前輪驅動·Traction avant) 승용차를 대량 생산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았던 시트로앵은 홍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25년 에펠탑에 25만 개의 전구로 ‘시트로앵’이란 글자를 새겨 10년 동안 야간 점등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 감각과 기술혁신의 선두주자 시트로앵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판매와 경영엔 무능했다. 그는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다. 또 무리한 사세 확장을 했다. 결국 많은 부채를 안게 됐다. 34년 말 타이어 생산회사 미쉐린이 시트로앵사를 인수했다. 화병이 위암으로 도져 수술을 받은 시트로앵은 수술 후유증으로 35년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는 84년 첫 시트로앵 공장이 있던 자리(파리 15구)에 ‘앙드레 시트로앵 공원’을 조성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시트로앵은 76년 푸조사와 통합돼 PSA 푸조-시트로앵으로 재출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트로앵과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와 기술자들은 설립자의 정신을 받들어 파격적인 디자인과 신기술에 의한 신차를 속속 개발했다. 이들 기술진이 내놓은 두 가지 시리즈는 오랫동안 롱런한 화제의 작품이었다. 가장 획기적인 모델은 48년부터 90년까지 생산된 드 셰보(Deux Chevaux, 2CV로 표기)다. 이른바 ‘서민의 발’로 불린 경차다. 2기통 엔진에 배기량 300~600cc의 이 차는 모든 것이 특이했다. 총 50여 개의 모델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강철 대신 특수 플라스틱과 파이버 글라스를 합성해 보디를 얹었다. 전륜구동의 4단 수동기어를 부착했다. 대학생과 직장인의 애마로 사랑받은 2CV는 총 90만 대가 생산됐다. 90년 단종된 뒤에도 5만여 대가 아직도 유럽을 누비고 다닌다.



81년 개봉된 007영화 ‘포 유어 아이즈 온리’에 이 2CV가 등장한다. 여주인공 역의 프랑스 배우 카롤 부케가 모는 노란색 2CV가 악당을 피해 산길을 다닌다. 또 다른 모델은 DS시리즈다. 서민용 2CV시리즈와는 반대로 고급형 차다. 55년부터 약 20년간 생산된 모델로 우주선 또는 쾌속정을 방불케 하는 유선형 디자인이다. 세계 최초로 유압 서스펜션과 코너링 라이트가 장착됐다. 차 높이도 접지면에 따라 5단계로 자동 조정된다. 샤를 드골 대통령과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DS 리무진 모델을 공용차로 사용했다. 드골 대통령이 타던 DS-19 무개차는 이제 골동품이 됐다.



파업 잦은 프랑스, 좋은 차 생산 힘들어

창조적 DNA의 소유자 시트로앵의 기술 전통을 계승한 프랑스 차는 독특한 디자인과 앞서가는 기술로 정평이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 차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6~7위 수준에 머무른다. 얼마 전에도 푸조-시트로앵사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사분규가 있었지만 프랑스는 노동자 파업이 빈번한 나라다. 자동차 산업은 제 아무리 기술력이 월등해도 파업이 장기화되면 좋은 차를 생산해내기 어렵다. 집중적인 일관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파업하다 복귀하면 작업 리듬이 달라져 불량품이 나오게 마련이다. 노동자의 권리투쟁은 현대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권리다. 다만 상습적 파업은 산업생산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노사관계가 안정된 독일·일본 생산차가 국제시장에서 호평받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전 외교부 대사 jayson-p@hanmail.net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