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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 만난 중국인들 꼭하는말 "한국 여자들…"

온라인 중앙일보 2012.07.29 01:44
1 난징에서 안후이성의 취안자오로 가다가 길을 잃어서 만난 608번 현도(縣道). 비가 갠 오후 추허의 강변에 목선 몇 척이 정박해 있다. 이 강변길은 지금까지 달린 길 중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서방 언론이 전하는 중국 농촌에 대한 불안한 뉴스 때문에 마음 편히 감상하지는 못했다. 2 취안자오에서 안후이성 수도 허페이로 가는 331번 성도(省道)에서 결혼식을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여기서 드디어 만나고 싶던 농민들과의 대화가 성사됐다. 3 난징과 허페이 사이에 있는 취안자오의 기차역. 도로가 광장처럼 넓다. 4 안후이성 차오후(巢湖)시 저가오(..)에 있는 상하이루완저가오(上海盧灣..) 희망소학교.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나온 아이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⑭농민들과 첫 만남

난징(南京)을 벗어나자마자 점이지대 없이 바로 한적한 농촌이다. 도시의 소란과 농촌의 정적이 이렇게 이웃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도시 위주의 불균형 성장이 그 원인이겠지만 여행자에게는 큰 수고 없이 농촌 깊이 들어갈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물론 길을 잃지 않았으면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난징에서 장강대교를 건너서는 312번 국도를 따라 가야 하는데 길도 여러 갈래인 데다 노변 장터에 인파까지 몰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참을 달린 끝에 안후이(安徽)성의 진입을 알리는 표지판에 104번 국도 표시가 있는 것을 보고 북쪽으로 하염없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1’로 시작되는 국도는 베이징으로 가는 길이다. 할 수 없이 현도 608번을 타고 남하해 성도 331번을 만나 서진(西進)하기로 했다.



추허(<6EC1>河)를 따라 가는 608번 현도는 많이 으깨어진 노면에서 주행해야 하는 애로를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치로 갚아준다. 소들이 풀을 뜯고 오리들이 물가에 떼지어 있다가 바람에 휩쓸린다. 사공이 목선에 올라 노를 저어가고 비가 갠 서쪽 하늘에는 구름이 오렌지 빛깔로 물들어간다.



그런데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을 해석하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만난 중국인들은 내가 자국인이 아니라는 걸 대번에 알아챘다. 새까맣고 갸름한 얼굴에 콧대가 높고 키는 삐죽 큰 저 녀석은 과연 어느 행성에서 왔을까. 동그랗거나 넓적한 얼굴에 콧대가 그리 높지 않은 남방의 중국인들로서는 궁금증을 버티지 못하고 다가오곤 했다. 하지만 이 농촌 사람들은 쳐다만 본다. 가끔 청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곳곳에서 폭죽 터뜨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불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사실 중국에 오기 전 가장 불안했던 것은 농촌 상황이다. 중국 농민에 대한 보도가 있다면 대부분 시위와 관련된 것이다. 2011년 가을에 일어난 광둥(廣東)성 우칸(烏坎)촌에서의 농민 시위는 서방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지방관리들이 농민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토지 사용권을 개발업자들에게 팔아넘긴 게 도화선이었다.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지도자 한 명이 체포돼 옥사하자 농민들은 죽창을 들었다. 이 마을을 봉쇄하는 계엄령이 내려지고 수개월간의 대치 끝에 광둥성 정부가 결국 농민들의 손을 들어줘 반란의 지도자가 촌(村)의 대표로 선출됐다. 2011년 12월 25일자 뉴욕타임스는 ‘우칸은 농촌 반란의 전조일 수 있다’는 대담한 제목과 함께 “중국에는 우칸처럼 부정에 고통 받는 62만5000여 개의 잠재적인 우칸이 있다”고 보도했다.



서방 언론은 중국 어느 한 곳에서 시위가 일어났다면 다른 곳에서도 끓어오르고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정부는 서방 언론들이 중국의 안정을 흔들기 위해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불만이다. 그럼 솔직히 공개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나쁜 일이 알려지면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나쁜 일이 더 일어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이런 사회주의 언론관에 따라 우칸촌 시위는 중국 내부에서는 보도가 통제됐다.



나는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잠재적인 우칸촌이 많을 것으로 가정하고 대비하는 게 안전하다. 중국에서 농촌은 개혁·개방 이후 분배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인 데다 도시 농민공으로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면서 농촌도 피폐해지고 있을지 모른다. 사회규범은 무너지고 인심이 흉흉해지면서 범죄가 판치고 외국에서 혼자, 그것도 빨리 도망칠 수 없는 자전거를 타고 온 나 같은 여행자들은 덩굴째 굴러온 호박으로 여기지 않을까.



5 중국 도로에는 여러 종류의 삼륜차가 다닌다. 자전거 입장에선 반갑지 않다. 매연을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선뜻 다가가서 말을 붙이지 못했다. 사실 농민들이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고 싶은 게 이번 여행에서의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아직 현장파악이 안 됐고 또 그들이 불의의 틈입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망설여졌다. 안후이성은 농업대성(農業大省)으로 불리지만 무엇보다 집단농장 방식의 인민공사가 처음 무너진 성이다. 그것 역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충격과 혼돈의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2년이 지난 1978년 11월 24일 내가 지나가고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는 펑양(鳳陽)현 샤오강(小崗)촌에서 18명의 농민이 오두막에 모여 목숨을 걸고 붉은 지장을 찍었다. 계약서에는 집단경작 대신 가구별로 농토를 나누고 할당 생산량을 채우면 나머지는 개인이 갖기로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는 사회주의의 원칙을 깨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중에 국무원 부총리까지 지내는 안후이성 서기 완리(萬里)는 이 역린을 승인하고 전역으로 확대시켰다. 이듬해 18명이 생산한 작황은 오히려 코미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전년 대비 6배 또는 5년간 생산량에 맞먹는 어마어마한 양을 수확했다. 그만큼 개인의 성취 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한 당 중앙은 82년 이 도급제(包干)를 중국 전역으로 확대했고, 중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됐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농업생산혁명의 단초를 연 성인 것이다.



농촌은 한동안 도시에 비해 상대적인 풍요로움을 구가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남동 해안을 중심으로 도시가 급성장하면서 농촌은 다시 뒤처졌다. 물가상승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저곡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농민들의 살림은 나아질 수 없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북한과 아프리카 서부의 작은 나라 베냉과 함께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세 나라 중 하나다. 도시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주민등록을 옮길 수 없다. 상하이 호적을 획득하는 것은 미국에 이민가는 절차와 유사하다. 상하이인과 결혼하거나 집을 사거나 석·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거나 전문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등 11개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이 통제를 풀 경우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어 농촌은 버려지고 도시는 미어터져 양쪽 모두 기능이 마비될 것을 우려한다. 그래서 지역적 격리를 유지하되 도농 격차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2006년부터 시행 중인 삼농정책이 그것이다. 이 정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농민들과의 만남이 드디어 이뤄졌다. 취안자오(全椒)에서 1박 하고 안후이성의 수도인 허페이(合肥)로 가는 331번 성도(省道) 길가의 한 마을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좋은 날이어서 경계심이 약해질 타이밍을 노려 하객들에게 다가가려는데 도회풍의 ‘밉상’인 중년 남성이 손사래를 치며 ‘저리 가라’고 한다. 보통 자전거를 끌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데 이 남성은 쌀쌀맞았다. 무안해서 주위를 맴돌며 조심조심 촬영하고 있는데 골격이 큰 남자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밥 먹고 가라면서 안으로 잡아끄는가 하면 담배를 권하는 등 어떻게 환대해야 충분할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와 말을 트자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며 이방인에 대해 눌러왔던 호기심을 발산했다. 이렇게 집단적인 대화를 하면 좋은 점이 그중에 꼭 한 사람은 표준어인 보통화를 하거나 알아듣는다. 거기에도 소학교 선생님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꼭 하는 얘기는 한국 여자들이 예쁘다는 것, 한국 드라마는 다들 본다고 한다. 연예인들이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예뻐보이는 것이라고 하면 돈 있으니까 성형수술도 하는 것 아니냐며 부러움을 멈추지 않는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 제품에 대한 인상도 좋다. 반대로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의 현재는 자신들이 지나온 과거’라고 말을 하며 혀를 찬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대만과의 관계를 풀었듯이 남북관계도 개선하라고 촉구한다. 중국 농촌에서 이런 대화가 오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들은 내가 물어보면 합창하듯 대답한다.



“뭘 심느냐?”

“쌀, 밀, 옥수수.”

“올해 농사 잘되느냐?”

“헌 하오(<5F88>好: 아주 좋아).”

“중국의 현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헌 하오.”

“그럼 미래에 대해서는?”

“하이커이(還可以: 괜찮을 거야)”

“도시가 훨씬 더 잘사는데 불만 없냐?”

“대신 여긴 시끄럽지 않고 공기가 좋잖아.”



다들 답변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불안하고 피폐된 농촌일 거라는 선입견과 너무 다르다. 결혼식이 있어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아니면 한국에서 온 희객(稀客)에게 심각한 얘기 하기 어려워서 그런가. 아니면 여기만 그런가? 좀 더 탐구해 보기로 했다. 어쨌든 농민들과의 첫 만남은 뉴스나 서방 작가들의 책에서 기술된 중국의 농촌과는 너무 다르다. 내 관점을 얻으려면 역시 직접 와봐야 해.








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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