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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부호·인재를 빨아들이는 다섯 가지 힘

온라인 중앙일보 2012.07.29 01:32



2012 런던 올림픽 놀라운 런던의 매력

2012 런던 올림픽 개막 공연(한국시간 28일 새벽)은 한마디로 영국과 런던의 미래상을 홍보하는 쇼케이스였다. ‘놀라운 섬나라(Isles of Wonder)’란 주제로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한 이 공연에는 런던이 전 세계를 상대로 자랑하고 싶은 메시지들이 함축적으로 담겼다. “영국은 이제 미래 첨단산업과 문화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 다문화 도시 런던이 있다.” 런던 하면 쇠락해버린 대영제국의 흔적 기관 정도로 여기던 지구촌 사람들에겐 놀라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올림픽을 세 번째(1908, 1948, 2012년)로 개최한 경이로운 런던의 실체를 짚어보자.



21세기 런던은 ‘부자 도시’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2008년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바탕으로 매긴 전 세계 도시 순위에서 런던은 도쿄(1조4790억 달러), 뉴욕(1조4060억 달러), 로스앤젤레스(7920억 달러), 시카고(5740억 달러)에 이어 5위(5650억 달러)를 차지했다. 6위인 프랑스 파리(5640억 달러)를 제치고 유럽의 경제허브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1인당 GDP는 7만4766달러로 추정됐다.



런던의 또 다른 경이로움 중 하나는 전 세계 부자들이 몰려든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선데이타임스가 발표한 2012년 영국 부호 순위를 보면 상위 10대 부호 가운데 영국 국적자는 단 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1∼6위가 모조리 외국인이다. 인도·우즈베키스탄·러시아·이탈리아·노르웨이·캐나다 등 이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전 세계 도시 순위 5위, 유럽선 1위

그렇다면 이들은 왜 런던을 선호할까. 파이낸셜타임스(FT), 포브스 등이 얼마 전 분석한 내용을 종합하면 핵심적인 이유는 돈이다. 부자들이 재산을 안심하고 지킬 수 있는 데다 이를 불리고 누릴 기회까지 얻으려면 런던만 한 도시가 없기 때문이다.



그 첫째가 세금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연립정부는 지난 3월 세제 개편을 통해 최고 소득세율을 50%에서 45%로 낮췄다. 유럽에선 낮은 편이다. 기업 경쟁력을 높여 경제를 살리자는 정책이다. 게다가 영국 바깥에서 얻은 소득에 대해선 세금을 일절 매기지 않는다. 해외 부호들로선 탐나는 절세 환경이고, 영국은 그들이 자국에서 투자하고 사업을 해 번 돈에 대해 세금을 거둘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지난달 19일 캐머런 총리는 “프랑스가 최고 소득세율을 75%로 올리면 영국은 붉은 카펫을 깔아놓고 세금 폭탄을 피해 탈출하는 프랑스인들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연 100만 유로(약 14억5000만원) 이상인 고소득자에게 최고세율(75%)을 적용하는 등 부유층·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경기부양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캐머런이 “높은 세금으론 국가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며 프랑스 부호 유치전략을 과시한 것이다.



둘째, 런던에 살면 전 세계로 통하는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 금융가인 시티와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수많은 투자은행(IB)을 활용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할 기회도 많다. 그 힘은 영국의 화려한 역사에 바탕 한다. 영국은 대영제국 시절 닦아놓은 인적 네트워크, 정보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영연방 소속의 아시아·아프리카·중동 국가들과 단단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덕이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에 진출하려면 ‘영국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이것은 홍콩·말레이시아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런던의 유력 인사들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각계 인사들과 언어·문화·역사에서 동질감을 갖고 있다. 물론 정치·외교·경제 관계도 긴밀하다. 북미·아시아 시장의 중간시간대라는 점도 강점이다. EU 회원국이면서 유로화는 쓰지 않는 독특한 지위는 영국을 신뢰할 수 있는 요소일 수 있다. 런던에는 크리스티 경매장 등이 있어 세계적인 미술품·골동품에 어렵지 않게 투자하거나 수집할 수 있다. 심지어 관련 석사과정에 다닌 뒤 투자해볼 수도 있다.



셋째, 런던의 환상적인 서비스 산업이다. 지구촌 부호들이 런던에 정착해 생활·투자·사업을 하려면 주택 외에도 자가용 비행기, 요트, 리무진에다 오피스 빌딩, 보석가게, 미슐랭 별이 달린 최고급 식당과 와인, 개인적으로 즐길 최고급 부티크까지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신변을 보호할 경호업체, 재산을 불려줄 투자 자문과 법적인 문제를 처리해줄 법률서비스회사까지 필요하다. 명성을 관리할 홍보회사와 미디어, 특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고 영향력이 큰 영어 미디어도 빠지지 않는다. 유명한 사람이나 왕족과 만나 함께 사진을 찍고 자선사업에 동참하는 기회도 중요하다. 이 모든 서비스가 런던에선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가능하다. 이를 통해 부를 맘껏 누릴 수 있다.



런던의 서비스산업 가운데 법률 분야는 위력적이다. 영국법이 국제계약법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해사(海事)·투자·상속·부동산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 이혼 절차가 미국보다 쉽고 위자료가 많지 않다는 점도 일부 부호의 눈길을 끌 수 있다.



고급문화부터 대중문화까지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풍부하다는 점도 해외 부호들에게 매력 도시로 통하는 이유다. 런던에선 또 세계의 음식을 다 맛볼 수 있다. 최고급 리무진이나 스포츠카부터 요트, 심지어 우주여행권까지 럭셔리 쇼핑의 천국이다. 항공산업을 비롯한 교통 서비스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런던과 그 주변에는 히스로·개트윅·스탠스테드·루튼·런던시티·사우스엔드 등 공항이 여섯 개나 있다. 여기를 드나드는 승객은 연 1억2700만 명이나 된다. JFK 등 5개의 공항으로 1억700만 명을 실어 나르는 미국 뉴욕보다 많다. 그래서 비(非)영국인에게 런던은 접근하기 쉬운 도시다. 사실 런던의 중심 산업은 1980년대 이후 급속히 서비스 위주로 재편됐다.



넷째는 놀라울 정도로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을 들 수 있다. 심지어 런던의 33개 구 중 하나이자 금융중심지인 시티는 1만1000명의 주민과 통근자 33만 명을 대표하는 입주업체 3만2000개에 동등하게 투표권을 주고 있다. 쉽게 말해 시티 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는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영국에서도 이 지역만의 특권이다. 경제중심지다 보니 밤에 이 지역에서 잠을 자는 소수의 주민과 함께 낮에 근무하는 업체 대표가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비즈니스 민주주의인 셈이다.



다섯째가 부동산이다. 런던의 부동산 가격은 안정됐고 투자수익도 제법 난다. 금융가인 시티에서 매년 연말연초에 나오는 엄청난 보너스의 상당 부분이 주택 부분에 투자되는 데다 중동·동유럽·인도·홍콩의 부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면서 부동산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때는 물론이고 최근 유럽 금융위기가 고조돼 유럽 대륙이 몸살을 앓는 사이에도 런던의 부동산 가격은 내리지 않았다.



영국의 최대 부호인 인도 출신 락슈미 미탈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 회장은 2004년 부자 동네인 사우스 켄싱턴 지역의 켄싱턴 가든 18~19번지 저택을 당시 주택으론 세계 최고 가격인 5700만 파운드(약 1020억원)에 구입했다. 이듬 해엔 켄싱턴 가든 6번지 저택을 1억1700만 파운드(약 2100억원)에 사들여 세계 최고가를 다시 갈아치웠다. 이 주택들은 요즘 구입 당시에 비해 두 배쯤 올랐다고 한다.



런던의 상업용 부동산도 인기 투자 대상이다. 런던은 현대식 도심 비즈니스 센터를 전략적으로 건설해왔다. 금융가인 시티의 경우 부동산 공급이 달리자 90년대에 인근 템스 강변의 옛 항구 캐너리워프를 재개발해 제2의 금융·법률·서비스 지구로 바꿔놨다.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궁 맞은편의 템스 강변에도 60~90년대에 재정비를 단행해 음악당·갤러리·극장·영화관·서점들이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사우스뱅크센터’를 세웠다. 이 센터는 지금 런던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 템스 강변 하류 쪽에 유럽 최대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이 들어서면서 문화복합단지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좀 더 하류 쪽에는 지난 5일 높이 309m의 95층 건물인 ‘샤드 런던브리지’가 들어서서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21세기형으로 확 바꿔 놓고 있다.



한국, 亞 중심국가 되려면 벤치마킹 해야

파리 에펠탑에 버금가는 이런 새로운 랜드마크들 덕택에 낡고 칙칙하면서 19세기 고전미만 강조하던 런던은 완전히 현대 첨단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재개발을 통해 런던의 부동산 붐이 지속되면서 전 세계 기업인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독특한 점은 이런 재개발이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중심의 국제 협력을 통해 성사됐다는 점이다. 예컨대 샤드 런던브리지의 설계도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맡았다. 전통도시 런던의 놀라운 현대화에는 개방과 국제협력이라는 요인이 작용한다.



런던이 전 세계 부자와 인재들을 불러 모으고 다시 번영을 누리는 걸 마냥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한국이 아시아 중심국가로 발전해 나가려면 하루빨리 런던을 진지하게 벤치마킹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인택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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