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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깜짝 실적의 그늘

중앙선데이 2012.07.29 01:16 281호 30면 지면보기
‘전차(電車) 군단’의 화력은 실로 막강했다.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코스피(KOSPI)를 외롭게 견인해 온 전기·전자(電)와 자동차(車) 업종, 그중 간판 격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지난주 내놓은 2분기 영업실적을 보면 놀랍다. 특히 삼성전자의 실적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연합군을 밀어붙인 독일 전차(戰車) 군단을 방불케 한다. 반도체 불황과 애플과의 치열한 경쟁·특허소송을 딛고 2분기에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약 47조6000억원의 매출과 6조7000여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이다. 연 매출 200조원, 영업이익 20조원을 동시에 달성한 글로벌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꿈의 실적이라는 이 ‘200-20 클럽’에 삼성전자가 올해 도전장을 내민 것은 대단하다. 삼성전자, 그리고 현대자동차 관련 3사의 2분기 영업이익을 합치면 국내 30대 상장사(시가총액 기준)의 절반을 훨씬 웃돈다.

홍승일 칼럼

나라 안팎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이처럼 탁월한 영업실적을 이어가는 글로벌 기업이 버티고 있다는 건 대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주변의 박수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삶이 팍팍한 서민이나 매달 돌아오는 종업원 월급 챙겨 주기도 빠듯한 영세업자들은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냉담하다. 한마디로 낙수효과를 기대할 게 없다. 더욱이 서슬 퍼런 ‘경제민주화’ 구호에 이들 대기업은 몸을 사리고 있다. 사상 최고 실적을 내고도 홍보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되레 언론이 크게 다루지 않았으면 하는 기색마저 엿보인다.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가 스스로 뿌듯하지만 내심 불안한 구석도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이 자만과 실패를 낳는 경우를 허다하게 봐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갤럭시S가 아이폰 판매를 능가할 정도로 선전하는데도, 이로 인해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에 육박하게 되자 사업구성의 쏠림 현상이 조금씩 걱정스럽다. 한국 경제가 ‘삼성전자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하듯 삼성전자도 ‘휴대전화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할 판이다. 휴대전화 사업이 삐걱하면 삼성전자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가 어려워지면 한국 경제도 타격이 크다. 노키아가 흔들리자 핀란드 경제가 흔들렸다. 몇몇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는 이래서 불안하고 건강하지 못하다. 삼성전자ㆍ현대차 같은 기업이 열 개쯤 되면 모르되 그렇지 못하다면 중견·중소기업으로 산업의 허리를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20년 장기불황을 견뎌내는 건, 독일이 통독 이후 오랜 침체를 딛고 유로존의 경제엔진으로 거듭난 건 초일류 대기업들과 탄탄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 알짜 중소·중견기업)’이 조화롭게 버텨준 덕분이다.

그래서 상장사 어닝 시즌에 다시금 중소ㆍ중견기업의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우선 중소업계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대기업 하청에 안주하지 말고 신기술ㆍ신제품 블루오션과 드넓은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휴맥스는 셋톱박스를 만드는 벤처로 출발해 처음부터 해외에 눈을 돌린 결과 20년 만에 1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수출기업으로 성장했다. 중소업계의 정부 의존 습성도 문제다. 세계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제도가 가장 잘 발달한 나라가 한국이다. 좋은 제도도 많지만 툭하면 정부지원금에 목을 매는 상당수 중소업체의 속성과, 표밭을 탐내는 위정자들이 영합한 역대 정권의 합작품이다.

오늘날 막대한 이익을 향유하는 상당수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싹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해 왔을까.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표현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우리 안에 가둬두는 동물원 역할을 해 온 것은 아닌지, 중소업체의 피땀이 들어간 물건과 기술에 얼마나 제값은 쳐줬는지 되돌아 볼 때다. 전차 군단이 영업실적만이 아니라 공생ㆍ동반성장 실적으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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