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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계절에

중앙선데이 2012.07.29 01:14 281호 31면 지면보기
런던 올림픽이 개막했다. 4년 전의 베이징 올림픽이 떠오른다. 미국을 제치고 금메달 1위에 오르자 한껏 고조된 중국. 그러나 차츰 논조가 변했다. ‘금메달이 많다고 스포츠 강국이 된 게 아니다. 선진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금메달을 딴 탁구, 배드민턴, 양궁, 다이빙은 비인기 종목. 착각하면 안 된다’고 당 기관지가 제동을 걸었다.

올림픽 몇 달 전, 티베트 문제도 있었다. 성화 봉송은 ‘평화의 제전’과 거리가 먼 시비와 폭력사태로 얼룩져 중국의 평가를 떨어뜨렸다. 젊은 중국 누리꾼들이 반발하고, 외국 언론의 비난이 거세졌다. 베이징 주재 각국 대사관은 “이런 배타적인 분위기 속에서 안심하고 올림픽을 할 수 있을까” 염려했다. 중국 내 여론이 “세계의 지원에 감사한다”며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한 것은 5월의 쓰촨(四川)성 대지진 후였다.

그 전해 가을, 유력 일간지에 ‘베이징 올림픽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나의 기고문이 실렸다. 거국적인 준비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주인공은 각국 선수지 중국이 아니다.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고, 사람들이 자기 나라 국기를 흔들며 응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역할이다. 자국 선수의 활약에만 열광하고 다른 나라 선수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중국이라면 아무리 금메달을 따도 평가는 떨어질 것이라는 글이었다.

이런 쓴 비판을 수용하는 공정함, 깊은 심지는 뜻밖이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란 슬로건을 “자칫하면 전체주의”라며 냉정히 보는 지식인도 있었다. 자국의 약점과 평판을 잘 아는 열린 눈의 각계 인사들이 내셔널리즘의 자제와 현명하고 합리적인 행동을 호소했다.

1964년 도쿄, 88년 서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국가발전을 상징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원로 일본 정치인이 말하기를 “도쿄 올림픽으로 일본은 패전의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나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자신감이 생겼다. 또 규칙에 따라 전력을 다해 겨루는 국경을 초월한 스포츠의 멋진 면을 체감했다. 외국선수에게도 진심으로 박수와 찬사를 보내게 됐다”고.

서울 올림픽 당시 자기중심적 이윤 추구가 아닌 이웃과의 조화와 균형 있는 발전이야말로 국제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신문 칼럼을 읽었다. 어느 나라나 개방과 독선, 협조와 배척 사이를 오가며 자기중심을 극복하고 국제성을 높여간다.

요즘 서울 지하철은 영어·일본어·중국어로 안내하고 있어 고마운데, 종로나 용산에 있는 ‘여기는 세계의 중심’이란 간판은 어떨까 싶다. 외국 관광객이 늘었다고 하나, 이런 표현으로 나라의 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 텐데….

일본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 2개, 32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금메달 7개를 땄다. 자그만 일본인이 육상·수영 종목에서 우승한 것은 경이였다. 일본의 학교체육은 세계가 평가한다. 50년 전 초등학생 거의가 25m를 수영했다. 고3도 체육수업을 거르지 않고 한다. 내가 다닌 학교는 대입 위주의 고등학교인데도 체육시간에는 전체 남학생이 럭비와 유도·검도를 했다. 일본 중·고교는 클럽 활동이 활발하다. 전국고교야구대회 참가팀도 한국 50여 개교, 일본은 4000여 개교로 저변이 넓다.

계속 일본 자랑을 해 송구하지만 부족 간 대립이 격심한 이라크의 지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적을 쓰러뜨리는 서양 스포츠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와 경의를 가르치는 일본 무도(武道)를 장려하고 있다”고.

축구·야구·유도를 비롯한 일·한 스포츠사에는 교류와 경쟁의 스토리가 많다. 엘리트 스포츠도 국민건강도, 올림픽을 계기로 더욱 서로를 주목하며 수준을 향상시켜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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