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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정치를 조롱하다

중앙선데이 2012.07.29 01:13 281호 31면 지면보기
안철수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책 내고 방송 한 번 나간 걸로 단숨에 박근혜 대세론을 잠재운 안철수 교수. 그 기세가 무섭다. 이러다 정말 일 낼지도 모르겠다.

허남진의 세상탐사

안 교수는 아직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상태다. 정치권에선 그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지만 그는 여전히 한 자락 깔고 있다. 뒷전에 그냥 머물 수도 있다. 출마하더라도 검증이란 큰 산이 놓여 있다. 현실정치의 ‘흙탕 강물’을 과연 무사히 헤쳐 건널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기존의 정치권이 변화의 희망을 주지 못하고 지금 같은 불통의 불신 정치를 되풀이한다면 돌풍은 잦아들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한낱 몸짓에 불과할 수 있는 바람을 돌풍으로 키운 장본인이 기성 정치이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자신의 돌풍에 대해 “국민들의 갑갑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정치 현실에 대한 실망감이 저에 대한 기대로 모아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구체제를 극복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가치를 갈구하는 민심’의 열망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단다. 흥행도 없고 미래비전도 없이 ‘자기들만의 잔치’로 전락한 여야 각 당의 대선 경선전을 보노라면 안 교수의 ‘책임감’이 꿈틀대겠구나 짐작하게 된다.

안 교수가 독자 출마할 경우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게 정당 조직이다. 그래서 기존 정당과의 제휴가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그가 정부·여당 쪽에 좀 더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출마한다면 민주통합당 간판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민주당 일각에선 경선이 끝난 뒤 그 승자와 안 교수가 최종 결선을 벌이자는 시나리오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안 교수 주변에선 기존 정당을 배제한 독자 출전론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그 요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치다. 지금과 같은 인적 네트워크형 정당 조직은 국민 의사를 결집해 정치에 반영한다는 정당의 본래 목적에도 충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미 그 파워도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 시대에 발맞춘 쌍방향 소통의 SNS 고공 정치야말로 민의를 폭넓게 반영할 수 있고, 감성을 실어 나르는 데서 오는 파괴력도 만만찮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스마트폰 문자메시지 보내기조차 어눌한 아날로그 세대로선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다만 정치판의 기존 문법에 따르더라도 지금의 우리 정당들이 문제가 많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자체가 강고한 기득권이 돼 민심에서 멀어진 정당”이란 안 교수의 지적은 백 번 옳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안철수 돌풍의 숨겨진 본질은 기성 정치, 그중에서도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조롱인 셈이다.

헌법 제8조 2항엔 ‘정당은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원내 제1당인 새누리당부터 보자.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인가. 4·11총선을 겪으며 당명이 바뀐 새누리당은 어느 순간 ‘박근혜당’으로 변색됐다. 그의 눈치만 본다느니, 앞에선 말도 제대로 못한다느니 등 항간의 지적이 나오는 자체가 위험하다. 국민경선 도입을 둘러싼 논란 때도 박 의원이 직접 나서서 이견자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토론도 없이 특정 개인의 입장대로 당론이 결정되는 구조라면 민주주의 정당이랄 수 없다. 사당(私黨)이거나 파벌(faction)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새누리당에선 박근혜의 불통과 사당화 문제가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비박(非朴) 주자들의 통렬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박근혜로선 쓰지만 더없이 고마운 보약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의 사정은 더욱 한심하다. 정체성부터가 혼란스럽다. 여기저기 흩어진 야권을 끌어 모아 이루자는 게 오로지 ‘정권 퇴진’뿐이다. 퇴진시킨 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공허하다. 5년 전 심판받았던 그때의 정부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인가. 트위터상의 소수 떼쟁이들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비친다. 그러면 선명하게 그렇다고 말하든지. 한데 그것도 아니다. 방탄국회 논란에서 비쳐지는 오만함, 종편 출연 거부의 졸렬·편협함에까지 이르면 이들이 과연 국민을 두려워하는 공당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니 안철수가 뜨자 그나마 반짝하던 주자들마저 빛을 잃고 있는 것이다.
여야 정당들이 파벌로 전락하고, 정체성도 없고, 민심과 동떨어진 역주행을 계속하는 한 안철수 돌풍도 계속 간다. 그것도 조롱 수준을 넘어 더욱 험악한 기세로. 이미 회오리바람의 냄새가 심상찮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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