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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을 위한 변명

중앙선데이 2012.07.29 01:12 281호 31면 지면보기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연못 속 고래’라 불린다.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에서 붙은 별칭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주식투자액은 62조원.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5%를 넘는 국내 최대의 기관투자가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에 대한 증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KT&G 등 국내 기업이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을 받을 때 우호 지분을 보태는 백기사 역할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외 자금이 빠져나갈 때는 국내 주식을 사들여 시장 패닉을 막았다.
그랬던 국민연금이 최근 증권 전문가와 투자자들의 비판 공세에 시달린다. 미국 기업인 비스티온이 지난 24일까지 한라공조를 상대로 실시한 주식 100%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아 1000억원의 차익을 남길 기회를 날렸다는 것이다. 비스티온은 회사 지분 69.99%를 가진 대주주인데 공개매수 후 한라공조를 상장 폐지할 계획이었다. 국민연금은 2대 주주(지분 8.1%)로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상당수 전문가는 “연금 가입자의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투자원칙을 어겼다”고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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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국민연금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이번 결정에 대한 국민연금의 공식 입장은 “공개매수 가격이 기업가치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중요한 이유지만 국민연금 측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훨씬 더 큰 틀의 고민이 있다. 우선 한라공조 상장 폐지 시 다른 투자 기업에 미칠 영향이다. 현대ㆍ기아자동차는 공조 부품의 70%를 한라공조로부터 납품받는다. 산업계에서는 “비스티온이 한라공조 지분을 다 보유하면 이를 견제할 다른 주주가 없어 납품단가 인상 압박, 현대·기아차의 수익 악화가 우려된다”고 주장해왔다. 현대ㆍ기아차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으로선 눈앞의 1000억원 이익 때문에 미래의 더 큰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국부 유출 우려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한라공조 노조는 “비스티온이 1조2000억원의 이익잉여금에서 나오는 막대한 배당금을 챙긴 뒤 매각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2009년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의 특허기술을 빼돌리고 철수하는 바람에 회사 임직원은 물론 국내 경제에 큰 충격을 줬던 사례도 있다.
국민연금의 이익은 곧 국가의 이익이다. 이를 감안하면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결코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저버렸다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물론 국민연금이 되돌아볼 부분도 있다. 왜 아직도 많은 이들이 국민연금 기금의 투자 결정 과정이 독립적이지 않고 정치적인 입김에 휘둘린다고 의심할까. 국민연금은 의사결정이 투명하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의심을 불식시키려면 아예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해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럴 경우 기업이나 투자자의 불만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경제민주화 논란 속에서 대기업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은 주목 대상이다. 그런 만큼 주주권 행사의 원칙과 기준, 노하우를 하나씩 쌓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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