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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장애인도 ‘성과’로 기억되고 싶다

중앙일보 2012.07.27 00:51 종합 29면 지면보기
조혜경
경제부문 기자
관람객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시각 장애를 체험하는 ‘어둠 속의 대화’, 이 전시를 운영하는 엔비전스 사무실 한 켠엔 울타리가 쳐져 있다. 안내견을 위한 공간이다. 지난달 인터뷰를 위해 찾았을 때도 안내견 세 마리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시각장애인 직원이 18명이나 되는 이곳에 꼭 있어야 할 공간이다. 송영희(40) 대표는 “일터에 이런 공간이 없어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장애인 취업과 관련한 취재를 시작하면서 벽에 부닥쳐 좌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 달랐다.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대기업에 취업해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같은 현상은 수치로도 나타났다. 현재 취업한 장애인은 전국적으로 13만3000여 명. 1991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고용률(2.28%)로 보면 장애인 고용이 활발히 이뤄진다는 독일·프랑스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문제는 고용 이후다. 사실 요즘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같은 기본적인 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안내견을 위한 공간 같은 특수한 시설은 여전히 부족했다. 시각장애인이 근무하는 회사의 식당에는 점자 메뉴판이, 청각장애인이 근무하는 커피 매장에는 수화 메뉴판이 있어야 하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오히려 과도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달갑지 않은 배려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몸이 불편하다고 생각해 일에서 빼주는 건 배려가 아니라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양 팔이 없는 컴퓨터프로그래머 김영태(27·롯데정보통신)씨는 “채용할 생각이 있다면 ‘손이 없는데 어떻게 컴퓨터 자판을 치느냐’고 당연히 물어야 하는데 면접에서 그런 것도 묻지 않은 회사가 많았다”고 했다.



 장애인 자체의 문제도 있었다. 조종란(51) 장애인고용공단 이사는 “막상 장애인을 뽑으려고 해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기업 입장에서 뽑고 싶을 만큼 준비된 사람이 적다는 뜻이다. 조 이사는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목숨 걸고 스펙을 쌓듯 장애인도 그렇게 자기를 계발해야 한다”며 “공단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니 적극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었고, 조울증(양극성장애)을 앓던 고흐는 스스로 귀를 잘라 잘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그렇지만 베토벤의 작품을 듣거나 고흐의 작품을 볼 때 “장애인의 작품이구나”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사회에도 그들처럼 장애가 아니라 성과로 기억되는 이들이 나올 때가 됐다.



조혜경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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