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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안철수의 후흑 탓하지 말라

중앙일보 2012.07.27 00:48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냥 놔두지 않으니 어쩌랴’. 이번 대선엔 냉정하게 관전하고 투표로만 말하려고 했으나 이 대목에서 한마디 보태고 싶어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 대해 쏟아내는 정치권 주변의 말과 반응이 뭔가 본질을 피하고 외곽만 때리는 인상을 받아서다. 이들의 반응은 대략 세 줄기다.



 첫째로 비판. 대선공약서 같은 책을 내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안 원장의 행보가 대선행이 분명한데도 출마선언을 하지 않는 ‘음흉함’을 탓하는 한편으론 정치 경험이 없음을 걸고 넘어진다. 둘째로 무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는 안 원장의 출간 소식에 “출마를 정식으로 하셨느냐? (출마 여부가) 확실치 않다”며 신경쓰지 않는 척했다. 셋째로 수사학적 환영.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뜻을 같이한다. 기쁜 일”이라고 반응했다. 그런 한편으론 민주당 측은 그의 생각이 자신들의 생각과 비슷하다고 내세우며, 당의 경선이 흥행하면 안 원장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견제구를 날린다.



 이들은 각기 달리 말하는 것 같지만 관전자의 눈엔 한 뜻으로 보인다. 대선 야심이 분명한데도 출마 부분에선 입을 꾹 다무는 안 원장의 ‘낯 두꺼움’을 드러내고, 책 내용이 별것 없다고 깎아내리면서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데 ‘낯 두꺼움’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 대선 주자들이 조직을 끌고다니며 유도복 입고 멱살 잡히고, 군복 입고 쌍안경 들여다보고, 느닷없이 국에 간 맞추는 모습 연출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모습도 그리 나아보이진 않는다.



 또 자고로 낯 두껍고 뱃속에 야심과 흑심이 두둑한 ‘후흑(厚黑)’의 대가가 권력을 추구하고 쟁취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이다. ‘후흑’ 측면에선 역사적으로 유방과 쌍벽을 이루는 ‘후흑본좌’ 유비도 제 입으로 황제의 꿈을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서주성 백성의 여망에도 불구하고 머리 나쁜데 잘난 척하는 스타일리스 여포에게 흔쾌히 성을 내주고, 조조가 목전까지 쳐들어왔는데도 백성들 피란 속도에 맞춘답시고 행군하다 당양에서 박살나게 깨진다. 그래도 원소·원술·손견처럼 황제가 되고 싶어 나댔던 당대 영웅들을 다 제치고 결국은 저 홀로 황제가 되지 않았나.



 빨리 출마 선언하고 링 위에 오르라고? 요즘 권력은 국민의 투표용지에서 나온다. 기성 정치 울타리에 들어와야만 대통령 출마 자격이 있다고 국민이 동의한 적 없고, 링 위에 올라 잔 펀치 날리다 판정승으로 이기는 게 ‘대선 게임’이라 정한 바 없으니 안 원장을 향해 따지는 정치권의 자격시비는 설득력이 없다. 또 동소가 조조에게 권했듯이 “남다른 일을 행하는 자만이 천하를 얻는 법”이다. 정권을 창출하려는 자의 ‘후흑’과 ‘남다른 행보’는 경쟁력이지 반칙이 아니다. 솔직히 최고 권력자 자리가 낯 두껍지 않고서야 어디 해낼 만한 자리인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생각’이다. 잠재적 대선 주자가 자기 생각을 밝힌 책이 김장철 배추 팔리듯 팔려 순식간에 재판을 찍었을 만큼 국민 관심사가 폭발했다는 대목에서 대선 주자들은 뭐 느끼는 게 없는가? 우리는 그동안 무수한 대선 주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각 이해단체에 가서 민원해소성 공약을 쏟아내고,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구호를 외치고, 시장에서 시끌벅적하게 국밥 먹는 모습을 기억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권력쟁취 의지’의 확고함만큼 이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인가.



 『안철수의 생각』에선 그의 국제관계에 대한 허약한 이해력과 대안 없는 생각의 얕음은 드러냈지만, 최소한 그가 고민하고 생각했다는 점은 보여준다. 우리는 대선 주자들이 당리당략 빼고, 공장에서 막 뽑아낸 듯한 정형화되고 따끈따끈한 공약 말고, 우리 사회와 국민에 대해 자기 머리로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기에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우기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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