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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만 3140조원 일 기업 해외 M&A 붐

중앙일보 2012.07.24 00:28 경제 4면 지면보기
일본 기업들의 기업사냥 본능이 되살아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수시장의 침체로 경제 성장의 모멘텀을 잃은 일본 기업들이 요즘 해외 인수합병(M&A)으로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거품의 절정기인 1980년대 후반에 일본이 보여줬던 해외 M&A 열풍이 되살아나는 듯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꼼꼼하면서도 빠르게 사들여

 FT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이 해외 M&A를 자극한 것은 한국 및 중국 기업들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치열한 생존경쟁이다. 한국 기업들이 턱밑까지 따라온 가운데 삼성전자 등 일부 앞서가는 사례가 나오고 중국 기업들까지 추격 대열에 합류하자 돌파구로 해외 M&A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내수도 계속 시원치 않아 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또 지난해 3월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해 생산 시설이 파괴되고 전력난이 심해진 점 또한 해외 M&A를 자극한 요인이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들의 해외 M&A 규모는 840억 달러(약 96조3000억원)였다. 이는 세계 3위 규모다. 10년 전(85억 달러)보다 10배 많다. 올해 일본의 해외 M&A는 지난해 규모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 들어 7월 중순까지 일본 기업의 해외 M&A 규모는 450억 달러다. 이런 추세라면 올 연말엔 9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M&A의 배후에는 막강한 현금 동원력이 있다. 일본 기업들은 올 3월 말 현재 215조 엔(약 3140조원)의 현금을 쥐고 있다.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액수다. 그들은 제로금리 이점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80년대 후반처럼 방만하게 M&A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그때 일본 기업들은 자산 거품에 취해 해외 기업뿐 아니라 뉴욕의 록펠러센터 등 부동산까지 미친 듯이 사들였다. FT는 “당시 일본 회사들은 그저 사들이기 위해 기업을 인수했다”며 “하지만 요즘엔 꼼꼼하게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M&A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일본 경영자들이 앞뒤를 너무 재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는 것도 아니다. 스티븐 토머스 UBS 일본 M&A부문 대표는 FT와 인터뷰에서 “과거 일본 경영자들은 느린 의사결정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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