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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드디어 구름당 당수가 왔다

중앙일보 2012.07.24 00:03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드디어 구름당 당수가 강림했다. 단문의 코멘트로 환상정치를 해오던 그가 장문의 강령집을 들고 대중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출마에 대해서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 진행형 수사는 구름당의 공식 전략이 됐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작년부터 사람들을 조바심 나게 했던 이 발언이 구름 생성의 초기 시그널이었다면, 이젠 기상변화를 일으킬 정도는 됐다는 심중을 드러낸 창의문으로 봐도 될 듯하다. 의군(義軍)을 일으키겠다는 통문이 아니라 대의가 결집되면 행군하겠다는 조건부 제안서다.



 ‘철수 생각’이 태풍이 물러간 한여름 밤을 강타하자 각 진영 ‘후보들 생각’도 복잡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인물을 평생 상대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랄 수도 없고, 아니랄 수도 없는 인물이 정치권 담장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상황, 장내의 판도를 장외의 함성으로 일순간 교란시키는 상황을 수습할 방법이 정통 정치교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더욱이 ‘구름이 더 모이면 진군할지도 모른다’고? 정치의 최대 적이 불확실성임을 잘 알고 있는 유력 주자들에겐 불확실성 기류를 타고 공중에 흩어진 수천, 수만 개의 물방울을 호명하는 그를 어찌 상대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그래서 ‘정치 9단’들의 활극을 보며 호신술을 익혀온 박근혜 전 위원장도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정식으로 출마를 선언하셨나요?’ 이건 정통 정치교본에 나오는 논법이다. 출사표를 던져야 상대할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할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한창 생성되고 있는 구름당, 그게 해갈을 풀어줄 적란운이 될지, 아니면 사뿐히 흩어지는 새털구름이 될지 모르는 판에 섣불리 건드렸다가 허리케인급 태풍을 몰고 오면 10년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 야당 후보들도 손익계산에 들어갔다. ‘철수 생각’이 민주당과 친화력을 보인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성명을 내기는 했는데, 돌아서서 따져보니 한정된 표밭이 갑자기 비좁아진 듯해서 좌불안석이다.



 ‘철수 생각’은 민주화 25년 동안 의사, 개발자, 기업인, 사회사업가, 교수로 비범한 삶을 살아온 성실한 인물, 그런데 어느 날 공론장에 불려 나와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기부할 것을 요청 받은 내향적 인물이 피력한 사회개혁 소견서다. 누가 그러듯 개혁 현안에 대한 조리 있는 비평문 같기도 하고, 전선에 떼밀려 나온 저간의 사정과 행보에 대한 자기합리화로도 보인다. 이걸 정치적 소신으로 읽으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조합한 재료를 온건 진보적 레시피로 요리한 특선메뉴가 된다. 좌파의 거친 공세에 불안감을 갖고 있지만 결코 우파와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는 2040 젊은 층이 주요 고객이다. 특선 요리가 특별히 감칠맛이 나서가 아니라 그들의 상징자원과 기대지평을 투사할 사람, 사욕보다 공익에 더 신경을 써왔던 생생한 인물을 찾고 싶은 것이다.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저를 통해 분출됐다’는 수동적 인식에 도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로부터 정권교체의 캐스팅 보터인 2040세대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자기 확신으로 전환 중이다. 대선 후보들의 행보와 기성정치가 젊은 층의 기대를 냉각시키면 구름의 증폭 속도는 빨라질 것인데, 젊은 층의 미래가치를 대변하지 못하는 한국정치에서 그럴 개연성은 높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5·16 쿠데타를 감싸거나, 아버지 박정희와 대범한 선을 긋지 못하는 어정쩡한 발언이 반복될수록 젊은 층의 피로감은 누증된다. 그런 모습을 물고 늘어지는 민주당도 젊은 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미 정리된 것에 대한 재론이 지겹고 직설화법을 선호하는 그들은 자신을 옭아맨 불평등 구조와 불안한 미래자화상이 우선 걱정이다.



 점점 버거워지는 청춘의 덫, 소수가 성공하고 다수가 좌절하는 사회적 풍토, 정의를 외쳤던 민주정권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부조리의 무대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건사할 특별기동대를 고대하는 중이다. 산업화, 민주화 공적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기성세대가 부와 권력을 독식하고도 미래세대를 위한 공공 자원을 구축하는 데에 너무나 무지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 설전이 기성세대의 직무유기를 뒤늦게나마 회복하려는 반성적 모색인 것도 간파했다. 그러나 여전히 좌·우파 공적(功績) 싸움일 뿐 미래세대가 낄 자리는 없다. 이 자리에 안철수 원장이 안착했다.



 ‘철수 생각’엔 미래철학이 잘 안 잡혀도 2040세대는 자신들이 주역이 되는 사회의 지침서로 삼을 것이다. 기성정치가 여전히 이념 다툼을 한다면 구름당 당수가 진군명령을 통보받을지 모른다. 여기서 안철수 원장이 과연 정치적 실행력이 있을까를 반문하는 의구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마 대선 후보 최종 등록일이 임박한 11월 중순까지 불확실성을 타고 넘는 그의 ‘구름 위 산책’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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