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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 女論] 권순옥의 세 남자, 이상, 정인택, 박태원

중앙일보 2012.07.23 00:10 종합 36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나와 순영이 송군 방 미닫이를 열었을 때 자살하고 싶은 송군의 고민은 사실화하여 우리들 눈앞에 놓여져 있었다. 아로날 서른여섯 개의 공동(空洞) 곁에 이상(李箱)의 주소와 순영의 주소가 적힌 종잇조각이 한 자루 칼보다도 더 냉담한 촉각을 내쏘면서 무엇을 재촉하는 듯이 놓여 있었다. (…) 나는 코고는 ‘사체’를 업어내려 자동차에 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의전병원으로 달렸다.”(이상, ‘환시기(幻視記)’)



 이상의 소설 ‘환시기’에서 ‘나’는 이상 자신을, 순영은 권순옥(권영희), 송군은 소설가 정인택을 모델로 했다. 권순옥은 금홍이가 가출했을 때 이상이 사귄 여성이다. 이상은 다방 ‘제비’가 파산한 뒤 부모의 집을 저당잡혀 다시 인사동 카페 ‘쓰루(鶴)’를 인수하는데 이 카페의 여급으로 있었던 여성이 권순옥이다. 그러나 그녀는 “고리키 전집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독파했다”는 지적인 여성이었다. 1930년대에는 카페 여급들 중에 인텔리 여성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이상의 친구였던 정인택이 짝사랑하면서 이들은 삼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권순옥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정인택이 위 대목처럼 자살 기도까지 하게 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권순옥과 정인택이 결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적은 것이 소설 ‘환시기’다. 이들 결혼의 사회를 이상이 보았다는 것도 당시 화제가 되었다.



 이 사실은 이상이 죽은 뒤 정인택이 쓴 ‘불쌍한 이상’(조광, 1939.12)에서 “이상이 그 야윈 어깨에 명재경각의 저를 걸머지고 밤 깊은 종로거리를 헤매던 일,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그때 이상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고, 내 아내도 없고…”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권순옥의 문단 남성들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그녀는 정인택과 두 딸과 함께 월북했는데 도중에 정인택은 병사했다. 그 후 그녀는 가족들을 남한에 둔 채 납북된 소설가 박태원과 재혼하게 된다. 정인택의 둘째 딸인 정태은의 회고에 따르면 박태원은 자상한 아버지였고 권순옥은 전신마비와 실명 등으로 고통받던 박태원을 극진히 보살폈다고 한다. 또한 권순옥은 박태원의 구술을 채록하고 마지막은 직접 창작까지 해서 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완성시켰다고 한다(정태은, ‘나의 아버지 박태원’, 문학사상, 2004.8).



 권순옥은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 작가들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던 이상, 정인택, 박태원 세 사람과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얽힌 여성이었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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