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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만한 공포가 있을까 ‘미쓰 고’서 잘려보니 알겠더라

중앙일보 2012.07.23 00:09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범식 감독은 “공포물에 대한 애정이 크다. 동심을 소재로 한, 슬프면서 아름다운 공포물을 또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엄마를 기다리던 늦은 밤, 집에 괴한이나 귀신이 나타나면 어쩌나. 누구나 어릴 때 가졌을 법한 공포다. 악몽 속에서 악당이나 귀신을 피해 달아나는 발걸음은 왜 그리 더 딘지…. 옴니버스 공포영화 ‘무서운 이야기’(25일 개봉)의 첫 번째 에피소드 ‘해와 달’은 그런 원초적 공포에 사회적 메시지를 접목했다. 늦은 밤 아파트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남매가 괴한과 귀신의 등장으로 극한의 공포를 경험하는 전반부는 판타지다. 하지만 시위과정에서 누나를 잃고 해고된 청년이 늦은 밤 아이만 홀로 있는 사장 아파트에 들어가 복수를 시도하는 후반부는 현실과 접점이 닿아있다.

부천영화제 개막작 ‘해와 달’의 정범식 감독



 이 영화는 19일 부천 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공포영화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기담(2007)’의 정범식(42) 감독. 그는 음향이나 특수효과에 기대지 않고 공포를 극대화하는 ‘감성공포’ 전문가 다. 안병기 감독의 ‘폰’(2002) 이후 이렇다 할 공포물이 드물었던 충무로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5년 만에 한여름 더위를 식힐 공포를 들고 온 그를 만났다.



공포영화 ‘무서운 이야기’ 속 ‘해와 달’의 한 장면.
 -공포물은 한국영화의 취약지대다.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어느 날 아이들과 집에 왔는데 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나갈 때 잠그는 걸 깜박한 거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현관에서 ‘아빠와 같이 왔으니 도둑은 당장 나가라’고 외쳤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릴 때 그랬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에 누군가 숨어있다가 나를 쫓아올 것 같은 두려움은 어릴 때 누구나 갖는 공포다.”



 -굳이 후반부를 해고자의 복수로 설정 한 이유는.



 “허구보다 현실이 더 공포스럽다는 걸 말하려 했다. 전반부에서 어린 시절의 공포를 떠올린 관객은 후반부에서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분신 자살한 해고자의 누나가 귀신으로 나타나 동생의 복수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장면은 무섭지만 슬프다. 누나 귀신은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 ‘미쓰 고’ 감독에서 하차한 것이 영향을 줬나.



 “배우와의 마찰로 촬영이 중단됐고, 한 달 뒤인 지난해 8월 제작자로부터 감독교체 통보를 받았다. 해고당하고 보니 언론에서 접하던 해고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더라. 고통스러운 사회현실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씻김굿 같은 영화다.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와 삼촌, 고모, 조카가 출연했다. 힘들 때 가족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잔혹한 묘사 없이 스릴감을 주는 노하우는.



 “살면서 근원적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다. 그리고 두려움과 상상으로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런 근원적 공포를 미술적 장치와 카메라 기법으로 건드리면 잔혹한 묘사 없이도 관객의 심장을 얼어붙게 할 수 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영화에 서브 텍스트(숨겨진 문맥)를 넣는 걸 즐긴다.”



 -전작 ‘기담’에도 서브 텍스트를 넣었나.



 “주인공 박정남(진구)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메타포(은유)였다. 일제강점기 엘리트 의사의 길을 가는 정남은 시대에 순응하는 인물을 상징한다. 모든 게 영원할 거라 믿었던 그는 결국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아내와 사별한 채 1979년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최고 권력자도 후대의 평가와 운명 앞에서는 연약한 존재다. 그런 연민과 슬픔을 담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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