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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장화의 위안

중앙선데이 2012.07.22 02:43 280호 4면 지면보기

“비가 많이 오네. 출근할 때 큰 우산 가져가요.”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진 목요일 오전. 큰애를 학교에 보내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옷이 많이 젖겠는데, 신발은 뭘 신고 가나.”

주섬주섬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대체로 장마철 출근길은 우중충합니다. 옷차림도 왠지 그렇고, 검정 아니면 감색 우산을 들고 있는 표정들도 그렇습니다.
어, 그런데 이날은 좀 달랐습니다. 비가 제법 내려서일까요, 아니면 시간을 잘 맞춘 걸까요. 지하철 안이 환했습니다. 형형색색 장화 덕분이었습니다. 빨간 장화, 파란 장화, 찢어진 장화는 아니고 체크 무늬 장화 등. 마치 비가 많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 장화 천지였습니다. 최근 몇 년간 유행이라는 장화 열풍의 본색을 비로소 본 느낌입니다. 하루 종일 신고 있으려면 불편할 것도 같은데, 그건 당사자 얘기고, 어쨌든 보기에 지루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장화를 신으면 물웅덩이만 골라 다녀야 제맛입니다. 물도 막 튀기고, 깊어 보이는 곳에 가서 서 있기도 하고. 비가 아무리 와도 난 괜찮을 거라는 작은 위안을 장화는 줍니다. 남자들이 군대 가서 군화를 처음 신었을 때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겠죠.

점심때가 되자 거짓말처럼 해가 쨍하고 났습니다. 땡볕 무더위에 멋져 보였던 장화가 갑자기 덥게 느껴집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합니다. 그래도 장화는 오늘의 임무를 멋지게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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