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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이혼한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도 행복한 기억이라고는 할 수 없을 터, 그런 아픔이 있는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던지기까지 겪어야 했던 시간들을 어린애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아는 사람들만 아는 어른들의 이야기’의 느낌은 SBS ‘고쇼’에 출연한 윤여정을 보며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내가 평창동 비구니” “우리 엄마 89세, 나 64세 우리 집은 귀곡산장”…. 쉴 새 없이 ‘빵빵 터뜨려 준’ 그의 유쾌한 농담에 시원하게 웃고 나서 혹시 어린애들이 ‘예능 늦둥이’ 어쩌고 하는 경박한 표현으로 이 배우의 웃음을 진짜 우습게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웃긴 말로 표현하기까지 그가 지나왔던 힘든 시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이혼과 생활고, 짐작이 가능한 외로움, 오랜 경력상의 공백 등을 뚫고 그는 자신의 직업에서 우뚝 서고, 아들 훌륭하게 키워내고 무엇보다 인생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깔끔하게 살아왔다. 그런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저렇게 유머의 대상으로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 거다. 그 의미를 애들은 모른다.
며칠 전 찾았던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 상영관에서는 진짜 ‘바로 여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극장 안에는 김 여사 또래의 우아한 중년여성들이 단체 관람을 온 듯한 분위기였다. 참 보기 힘든 풍경이다. 영화 역시 ‘뭘 좀 아는 어른들’에게 더할나위없이 흐뭇함을 안겨주었다.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파리의 밤 풍경, 모네와 고흐의 그림이 배경화면이 되는 영화 화면, 피카소와 달리와 모딜리아니의 그림과 인생 이야기, 헤밍웨이·스콧 피츠제럴드·콜 포터·만 레이·장 콕토·루이스 브뉴엘 등과 대면하는 듯한 즐거움까지.
시간여행을 하게 된 남자 주인공이 루이스 브뉴엘에게 “이런 영화 아이디어 어때” 하며 건네는 내용의 의미라든지, 박물관 갤러리에 등장하는 가이드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임을 한눈에 알아본다면 뭘 좀 아는 사람의 ‘발견하는 재미’가 한층 커질 영화다.
그러나 꼭 뭘 알 필요도 없다. 사는 맛을 아는 보통의 중년이라면 충분하다. 혹시 한 번이라도 거쳐봤거나 꿈꿨을 비 오는 밤 파리의 아름다움과, 작가들의 이름이라도 주워섬길 수 있는 상식과, ‘우리는 과거의 어느 순간을 황금시대라 꿈꾸지만 결국 그건 황금시대가 지나가버린 시간이기 때문’이라는 노감독의 메시지에 끄덕거릴 연륜만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건 진짜 애들은 잘 모르는 거다. 김 여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할 예정이다. 애들이랑 배트맨이라도 같이 봐야 극장 구경 한번 할 수 있나 했다가 친구들이랑 같이 가는 자녀에게 서운타 하지 말고 ‘뭘 좀 아는 어른’들만 즐길 수 있는 이 영화를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