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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 빠진 회의

중앙선데이 2012.07.22 02:23 280호 34면 지면보기
회사는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개의 회의를 하고, 심지어 하루 종일 회의만 하다가 보내는 날도 있으니까. 회사원이 회사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회의인지도 모르니까.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회의 시간에 김 대리는 생각한다. 대개 서양철학사에서는 근대적인 인간의 출현을 데카르트의 제일명제에서 찾는다. 그것은 회의에 관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때 ‘생각’이 곧 회의다. 회의란 곧 의심하는 것이다. 모든 전제에 대해 의심해 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내가 보는 것들은 정말 존재하는가? 내 앞에 있는 사물, 사건, 세계는 정말 존재하는가?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존재하는가?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 보아도 도무지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철학의 제일명제를 삼자. 아무리 회의하고 또 회의해도 지금 이 순간 회의하고 있는 내 자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처럼 회의하는 자, 나는 존재한다. 중세는 개인이 존재하기 위해 신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신 없이, 오직 회의로부터, 회의하는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대적 자아가 출현한 것이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철학개론 시간에 들었던 데카르트의 제일명제의 요체는 이러했다.

회사에서 하는 회의 역시 회의에서 비롯된다. 지금 하는 방식이 최선인가? 적어도 차선인가? 효율적인가? 장기든 단기든 이익이 되는 일인가?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함께 의심해 보는 일이다. 회의란.

이렇게 말하면 회의에 대해 너무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아니다. 회의 역시 회의의 대상이다. 정말 회의란 필요한 것일까? 회의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회의란 결국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한다면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일 텐데 회의만 하다 정작 일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대개의 회의는 회의라는 형식만 빌렸을 뿐 사실은 이미 결정한 사안에 대한 설득인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설득이 아니라 그저 결정에 대한 길고 긴 부연설명에 불과한 경우 역시 적지 않다. 왜 회의를 하는 것일까? 회사는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회의를 통해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이 사안은 회의를 통해, ‘집단지성’을 통해 결정된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이다. 적어도 차선이다. 그런 착각을 선사한다. 회의는 ‘고독한 결단’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루 나눠준다. 아니, 책임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책임 소재 자체가 사라진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왜 회사에서 그토록 많은 회의가, 그토록 자주, 그토록 길게 열리는 것일까?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회사원 김 대리는 회의에 빠진다. 데카르트적 인간이 된다. 근대적 인간이 된다. 그렇다고 김 대리가 생각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다. 길고 긴 회의가 끝날 때쯤 김 대리는 자신의 회의를 발언한다. “이렇게 회의만 하면 일은 언제 하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제히 놀란다. 다들 잠시 회의에 잠긴다. 마침내 회의를 주재했던 사람이 잠긴 회의를 연다. “좋은 문제제기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 그럼 회의를 시작할까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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