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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3년판 성경 비뇰라 건축집…내겐 책이 아닌 ‘영혼’

중앙선데이 2012.07.22 02:11 280호 23면 지면보기
1 1700년대에 출간된 백과사전. 12권 중 제1권 내지. 2 1800년대에 나온 소설 ‘로마의 신비’의 내지 그림. 3 1573년에 출간된 성경책. 오스트리아 앨버투스 황제에게 바쳐진 책이다. 4 1800년대에 독일에서 나온 그리스 신화집의 삽화. 5 1800년대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라퐁텐 우화집. 6 170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나온 비뇰라 건축집.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김준목(50) 메타디움 에스앤티 대표의 경우가 그랬다. 중견기업 해외무역팀장으로 출장이 잦던 1990년대 초반 어느 날.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던 것을 좋아하던 그는 로마의 테르미니 역 앞 고서적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한 서적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애장품 <6> 기업인 김준목씨의 서양 고서

“역 건물과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계속 크로키하고 있더라고요. 같은 장면을 그리는 이유를 물었더니 ‘나는 시간을 그리는 화가’라고 하더라고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서 그림을 두 장 샀더니 자기 집으로 초대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로마 문화계의 거물이었어요.”

작은 성 같은 그의 집 거대한 창고에는 수십만 권의 옛날 책들로 가득했다. 그는 로마시대 인물인 키케로의 글이 들어 있는 고서를 선물로 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그냥 책 한 권을 주는 게 아니라 이 속에 든 한 영혼을 선물하는 것이야.”

그때부터 유럽에 갈 때마다 그를 만났고, 틈날 때마다 고서 수집 현장도 따라다니며 안목을 높였다. 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스티커 사진방 사업이 승승장구하면서 비교적 여유롭게 책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여 년간 모은 유럽 고서들이 3000여 권에 이른다. 오스트리아 앨버투스 황제가 등극할 때 바쳐진 1573년판 성경책은 당시 2000만원에 구입했는데 지금은 경매에서 1억2000만원을 호가한다고. 그는 왜 서양의 옛날 책에 꽂혔을까.

7 1800년대에 독일에서 나온 그리스 신화집 표지. 8 1800년대에 스페인에서 나온 세르반테스 자서전. 9 1800년대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라퐁텐 우화집 표지.
“디지털 시대에 웬 고서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저는 서양 문화의 소스를 갖고 싶었어요. 생각의 뿌리를 알고 그 소스를 섞으면 새로운 창조물이 나오거든요. 특히 건축이나 미술·음악 등 그림이 있는 예술 분야 책을 주로 수집합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을 집대성한 비뇰라의 건축집은 건축학도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이죠. 이런 정보를 학생, 전문가들과 공유하기 위해 지금 쓸 만한 책들을 CD로 만들고 있어요.”

지난해 5월 5일에는 파주 헤이리에 ‘네버랜드 어린이 책박물관’을 열었다. 책을 통해 꿈을 찾아내고 책과 더불어 인생을 살아가도록 훈련시켜 주는 공간이다. 앞으로 고서 박물관도 만들 생각이다. 책 속에 길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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