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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이념보다 전문성 갖춘 이사진부터 뽑아야

중앙선데이 2012.07.22 01:03 280호 7면 지면보기
MBC 노조가 170일간의 파업을 중단하고 18일 업무에 복귀했다. 방송 사상 초유의 장기파업이었다. 이를 계기로 공영방송 사장 선임 문제가 다시 수면에 떠오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낙하산 사장’ 논란을 끝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근본적으론 방송사 지배구조 개선 등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그렇지만 당장 사장 추천권과 임명제청권을 가진 이사회 구성부터 제대로 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KBS 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 모두 현 이사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방문진은 다음 달 8일, KBS는 다음 달 31일이다.

MBC 파업 중단 계기로 본 공영방송 사장 선임방식 논란

실천 여부를 떠나 최근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당은 KBS 이사회와 MBC 방문진의 이사 추천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도 20일 “정치권에서 동의한다면 KBS와 MBC 이사진을 정당 추천 없이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방통위의 이런 의지가 이르면 이달 말께 확정되는 방문진 신임 이사진 구성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공모 결과 KBS엔 97명이, 방문진엔 54명이 지원했다.

지금까지는 여야 지분을 나누는 게 관행이었다. KBS는 11명 중 여당 몫이 7명, 야당 몫이 4명이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방문진 이사 9명은 대통령 3명, 여당 3명, 야당 3명 식으로 추천받아 방통위에서 임명한다.

학계와 미디어 업계에서 지적하는 첫째 문제는 이사 선임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최종 선정까지 검증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는다. 특정 정당의 선거 캠프에 있었는지, 도덕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공개 검증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밀실선정’이다. 3배수 정도로 압축됐을 때 명단을 공개하고 언론 등에서 검증해야 한다.”(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 등을 갖추지 못한 일부 이사들의 자질 부족도 거론된다. “방문진 이사의 경우 1년에 회의 몇 번 하고 수천만원씩 받는다. 특급 대우 때문에 너도나도 하겠다고 난리다. 공영방송에 대한 식견이나 사명감이 없는 사람들, 특정 이념을 대변하는 단체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정당 공천 주듯 추천한다. 이런 사람들은 진영논리에 의해 행동하면서 정작 파업 등 중대사안에 대해선 무책임하다.”(익명을 요구한 언론학자)

둘째는 여당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사진 구성이다. 사장 선임 등 주요 안건을 다룰 때 이사들 사이에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다. “이사 선출 때 여야 추천을 받은 본래 취지는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현실은 표결을 통한 일방의 승리다. 여야 추천을 같은 숫자로 하거나 사장 임면 등 중대 사안은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을 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정상모 방문진 이사, 야당 추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선 방통위를 추천과 임명 과정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싫든 좋든 정치적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방통위에서 이사를 정하는 현 제도에서는 아무리 국민을 대표한다고 해도 정치적 지배구조를 반영한 결과가 된다.”(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선진국의 경우 지역이나 이익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다원주의적 참여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독일은 독립 기관인 방송위원회에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한다. ARD와 ZDF 두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방송위원회에는 각종 사회단체, 정당대표, 직능·종교단체가 골고루 참여한다. ZDF의 경우 최대 77명까지 위원을 뽑을 수 있다. 숫자가 많을수록 조정이 힘들지만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의지다. 사장은 방송위원 6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스웨덴 SVT는 사장 인사권을 갖는 운영재단 이사회를 사회 각계에서 뽑는다. 일본 NHK도 12명으로 구성된 경영위원회에서 사장을 선출한다.

물론 선진국이라고 다 정부와 완전히 독립돼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영국 BBC는 2007년 설립된 ‘BBC 트러스트’라는 이사회에서 사장을 뽑는데 이사회는 문화부의 규제를 받는다. 사장도 정부와 정치 성향이 비슷한 인사가 임명되곤 한다. 외압 시비도 종종 생긴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거대 정당들의 간섭이 심하자 공영방송 ORF를 2001년 공익재단으로 전환했다.

사장은 임명된 후엔 방송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도 사장이나 이사진 스스로 정권과 거리 두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학계와 업계의 공통된 주문이다. “전 세계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이라는 BBC의 자부심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방송사 경영보다는 사장 임기가 끝나면 옮겨갈 다음 자리에 관심이 많은 한국과는 사회적 성숙도가 다르다.”(윤석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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