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퇴 쓰나미 시대의 저금리, 잘못 대응하면 일본식 장기 불황

중앙선데이 2012.07.22 00:43 280호 20면 지면보기
통화당국이 최근 기준금리를 3.25%에서 3%로 0.25%포인트 내리면서 시중금리인 3년 만기 국채금리는 2.9%까지 하락했다. 10년 만기 장기 국채금리는 불과 2년 전에 5%였던 것이 줄곧 떨어지다 이번 금리 인하를 계기로 3.2%까지 내렸다. 이미 하락세인 금리를 한 단계 더 떨어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가계부채가 잘 줄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한 건 좀 의외일 수 있다. 하지만 당국의 고민도 이해할 구석이 있다. 가계빚 이자 부담으로 소비가 둔화되고 주택가격 하락으로 채무자의 대차대조표가 악화되고, 이것이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려는 고육지책이다.

통화정책은 섬세한 칼이라기보다 큰 망치에 해당한다. 정교하게 표적을 공격하기보다 광범위하게 파급되는 둔기에 속한다. 따라서 당국이 기대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불가피하므로 보완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금리 인하가 저소득 계층의 빚 부담을 더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계층의 비은행 금융권 차입 비중이 50%에 이르고, 고금리 가계대출 기관에서 차입한 사람도 1~3분위 소득자나 임시·일용직에 많다. 따라서 이들의 대출금리는 정책금리 인하의 영향을 덜 받는다. 또한 금리 인하 분위기에 편승해 가계부채를 줄이려는 정책적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저금리는 채무자와 채권자에게, 또 자산가와 비 자산가에게 상반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유념하자. 사실 요즘처럼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특히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더 상세히 보자.

금리가 떨어지면 금융 소득이 준다. 연리 5%일 때 10억원의 자산은 연 5000만원의 소득을 낳지만, 3%로 떨어지면 2000만원 줄어든 3000만원이다. 50대 연령 이후의 은퇴 계층은 당연히 소비를 줄일 것이다. 은퇴 준비자들의 여윳돈 마련 눈높이도 상향 조정될 것이다. 저금리가 반영속적이라고 판단되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릴 것이다.

이에 비해 고정급여를 받는 이들 소득의 값어치는 올라간다. 5% 금리 때 연 5000만원의 소득자는 적어도 현금흐름만 놓고 보면 10억원 자산가와 맞먹는다. 금리가 3%로 내리면 같은 소득 5000만원은 약 16억원 자산가 행세를 할 수 있게 한다. 저금리 기조에선 공무원·교직원처럼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안정된 고정급여 직업의 인기가 올라간다.

사회 전체로 눈을 넓혀 보자. 고정급여자가 많은 사회, 즉 청·장년층이 많은 사회에서 저금리는 일자리 가치를 높여준다. 반면 은퇴 준비자나 은퇴한 사람, 장년·노년층이 많은 사회에선 저금리는 소비 둔화 효과를 크게 낸다. 이들은 자산을 더 쌓으려고 저축을 하고 이 돈은 재테크 채권시장으로 몰려들어 금리를 또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나라 가계와 비영리 단체의 경우 금융자산이 금융부채의 2.1배에 달한다. 따라서 저금리를 피하는 쪽으로 자산 구성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다소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해외 고금리 자산으로 일정 부분 포트폴리오를 짤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저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을 누리면서 동시에 자산 쪽의 소득 감소라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일본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면서도 미국과 달리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쌓아 놓은 자산의 소득이 저금리로 인해 줄어드는 효과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일시적 현상이라면 모르되 저금리가 지속적이라고 믿게 되면 행동이 바뀔 것이다. 저금리에 대해 다각적 대응을 준비할 때가 됐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