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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불우이웃돕기, 왜 연탄·김장 봉사에만 몰리나

중앙선데이 2012.07.22 00:38 280호 23면 지면보기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저는 대학 때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사회복지학은 어려운 사람을 위한 학문이지만 결국은 부자를 위한 학문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의 맹점을 보완해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사회복지제도는 부자가 부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거예요.

CEO 일요 경영산책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③ <끝>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어느 농촌 마을에 큰 부자가 살았습니다. 어느 해 극심한 기근이 들었는데, 부자는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겠죠. 하나는 수백 가마의 쌀을 지키려고 담장을 높이 쌓는 겁니다. 곳곳에 경비원을 풀고 외출할 땐 방탄 승용차를 타는 거죠. 집은 따뜻한 안식처일지 모르지만 대문을 나서는 순간 불안에 떨 겁니다. 다른 하나는 창고의 쌀을 30%쯤 풀어 마을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겁니다. 어쩌다 이 집에 불이 났다고 해보죠. 굶어죽을 수 없어 이 집 담장을 넘으려던 이들이 물동이를 들고 불을 끄러 달려올 겁니다. 부자가 대문을 나서면 주민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뭐 도울 일이라도 없느냐고 물을지 모르죠.

사회복지학은 되레 부자 위한 학문
제가 설립한 스페코는 장비 플랜트 전문업체입니다. 스페코의 장비를 팔러 다니면서 저는 “우리 회사 제품은 복 받는 기계”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우리 기계를 들여놓은 분들은 다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죠. 당시 레미콘·아스콘 붐이 일어 실제로 고객들이 돈을 벌었어요. 돈을 벌면 좋은 일에 쓸 거고 사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거라고 했죠. 이런 생각으로 돈을 버니까 돈도 잘 벌리더라고요. 실제로 저는 대주주로서 받는 배당금을 상당액 기부합니다. 개인적으로 기부를 하려면 배당금에서 또 세금을 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쓴 돈이 결국 돌아오더라고요.

1960년대 후반 사회복지학과를 다닐 때 정신지체아동 보호시설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한겨울이었는데 한 여성 봉사자가 찬물에 옷을 빨고 있었습니다. 손등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더군요. 저는 그런 희생적이고 육체적인 봉사를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돈 벌어 남을 돕기로 마음먹었죠. 일찍이 돈 버는 재주가 있는지 학창 시절에도 미팅을 주선해 가정교사 이상의 수입을 올렸거든요.

삼익악기는 2010년 업종 대표 중소기업 가운데 매출액 대비 기부액 비중이 가장 컸습니다. 50억원 이익을 내면 10억원을 기부했지요. 우리가 인수한 미국 스타인웨이의 경영진에게도 매출액의 1~3%를 사회에 환원하면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당신네들 스타인웨이는 ‘위대한 이름’이라고 하는데 아프리카 소년에게서도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냐고 했죠. 그런 식으로 기부하면 10만 달러짜리 그랜드 피아노를 3% 비싼 10만3000달러에 팔아도 살 겁니다. 스타인웨이 같은 명품을 들여놓는 부유층이나 큰 공연장이라면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구매하는 순간 당신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3000달러를 보내는 것”이라는 말에 좋아라 할걸요. 복 받는 일이니까요.

나눔 활동은 이렇듯 감성 마케팅에도 효과적입니다. 단적으로 삼익 피아노가 다른 비슷한 가격대의 피아노와 어떻게 다르냐는 고객 질문을 자주 받아요. 피아노 소리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 좀 구닥다리 설명입니다. 수익금 일부를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 데 쓴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한 차원 높은 마케팅이죠.
삼익악기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20만 달러씩 출자해 삼익기술학교를 세웠습니다. 지난 2월 개교식을 했는데 교장은 교사 출신의 현지인입니다. 여기서 피아노 조율, 악기 제조 목공예, 제빵, 봉제, 이·미용 기술을 가르칩니다. 1년 과정을 마친 학생들에게는 마이크로 크레딧(Micro credit)을 통해 창업 비용을 꿔주려고 합니다. 말 그대로 100만원 이하의 소액 대출이죠. 거기서는 그 돈이면 구멍가게 정도는 차릴 수 있어요. 창업 인큐베이팅을 거쳐 자립까지 시키는 거예요. 한국인이 하는 봉제공장에 취직도 시킬 겁니다. 봉제 일을 하는 인력을 우리 기술학교가 공급하는 거죠. 그쪽 공장에 이런 구상을 귀띔했더니 우리 학교에 미싱을 제공하겠다고 하더군요. 기술을 배우는 동안에 한국어를 익히면 여러모로 이득이 될 거예요. 현지 법인 우리 직원들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20년 동안 돈을 벌었는데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 이상의 사회 환원을 지역사회에 해보자고요. 포스코가 인도에 진출하면서 현지인과 다소 반목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벌이는 이런 사회공헌 활동은 일종의 선무작업 구실도 해요.

나눔은 고도의 감성 마케팅
사회공헌 활동은 진정성이 관건입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기업들은 달동네에 연탄을 나르고 김장 담가주는 봉사활동을 많이 합니다. 물론 좋은 활동이지만 좀 더 업그레이드된 봉사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요즘 연탄 질이 떨어져 한겨울에 하루 두세 번 갈아야 된답니다. 김치 다섯 포기면 겨울을 나겠지만 매일 김치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이런 일은 중소기업에 맡기고 대기업은 규모와 능력에 걸맞은 일, 돈과 조직, 그리고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활동을 하면 어떨까요. 가구당 100만원이면 소년소녀 가장이나 독거노인 집에 전기 보일러를 달아줄 수 있습니다. 영세민은 전기료도 공짜죠. 재벌 총수 중에 ‘연탄 쓰는 가구 없애기 운동’을 벌일 분 나서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1년에 10억원씩 10년만 기부하면 없앨 수 있을 거예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전 세계에 백신을 보급해 소아마비를 추방하겠다고 합니다. 재산도 재산이지만 자녀들에게 이런 좋은 평판을 물려줘야죠. 요즘 경제민주화 여론이 비등한데 이런 일을 벌이면 재벌개혁 담론도 부드러워지지 않을까요. 이익을 많이 내면 나눔 활동도 확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지만 대학 등에 기부해 자선가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저도 좋은 일 하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기업인 김종섭은 스타인웨이 인수로 1등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이 회사 잘 지키는 걸로 저는 만족해요.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인 기부 프로그램을 잘 만들면 우리나라에 참여할 기업이 많습니다. 제가 모교인 서울대 발전기금 이사를 맡고 있는데 서울대에 글로벌 사회공헌센터를 짓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 측에서 건축비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없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중근 부영 회장을 찾아갔습니다. 동남아 지역 각급 학교에 디지털 피아노 기증 활동을 해온 부영이 저희 제품을 1만 대 구입한 그때까지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이 회장을 만나 “서울대 안에 들어설 이 건물에 부영 간판 하나 다시라”고 했죠. 이 회장은 고맙게도 즉석에서 건축비를 부담하겠다고 수락했습니다. 아마 삼성·현대자동차·SK·LG 같은 굴지의 대기업들도 회사 이미지 높이는 좋은 프로그램만 있다면 거액을 쾌척할 겁니다. 세금 감면 혜택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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