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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반 토막’의 공포

중앙선데이 2012.07.22 00:12 280호 31면 지면보기
곳곳에서 ‘반 토막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우선 골프회원권 시세표를 훑어보면 이런 찜찜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남부CC의 골프회원권 값이 마침내 10억원대가 무너져 9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이 회원권은 한때 23억원이나 했다. 반 토막이다.

김시래의 세상탐사

요즘 마음 편치 않은 한 중견기업 사장은 골프를 칠 때마다 캐디들에게 농 반 진 반으로 “내가 그간 받은 서비스가 무려 10억원어치가 넘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허탈해 한다. 상당수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국제회계기준(IFRS) 때문에 골프 회원권 가치의 하락분을 재무제표에도 반영해야 한다. 하이투자증권이 2011회계연도 결산을 하면서 회원권 가치 하락분을 반영하지 않아 회계 위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3년 전부터 회원권에 거품이 많다며 보유분 30계좌를 모두 팔아 치운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식견이 화제다.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홍보실에서 갖고 있던 마지막 1계좌까지 다 팔았다.

골프 회원권 반 토막의 원인이야 많겠지만 크게 보면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자산가치의 상승과 하락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부동산과 주식시장 역시 골프회원권 시장 상황과 다를 바 없는 이유다. 이들 시장도 이미 침체 늪을 떠나 반 토막의 공포 단계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그래서 KB국민은행의 박합수 부동산팀장 논리가 더 솔깃하게 들린다. 올 하반기부터 동탄2신도시, 위례신도시, 검단신도시, 양주신도시 등 30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 분양물량이 수도권에서 2~3년 새 쏟아질 전망이다. LH공사의 보금자리주택도 32만 호에 이른다. 민간택지와 재개발, 재건축 물량은 뺀 수치다. 수도권 아파트 수요는 연간 약 20만 가구. 한마디로 경제상황이 나쁜 시점에 부동산 시장의 공급초과 현상이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 폭락의 단초가 공급 초과임을 감안할 때 부동산 시장에서도 반 토막의 공포가 근거 없는 게 아닌 셈이다.

유럽발 금융위기에 빠진 글로벌 주식시장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지는 펀드 수익률을 바라보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반 토막의 추억이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스피 시가총액이 최근 석 달 새 120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해외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은 더 침울하다. 중국 상하이 주가지수가 3년 전 6000대이던 게 요즘에는 2000 안팎을 맴돌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는 그래도 괜찮다는 한국·중국 증시에서 요즘 벌어지는 일들이다.

물론 자산가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바닥론’도 만만치 않다. 연일 매물이 쏟아지던 골프회원권의 하락세가 주춤해졌다고 한다. 투자 목적으로 회원권을 샀던 사람들은 거의 다 빠져나가고 실수요자만 남았다는 게 동아회원권 거래소 측의 분석이다.

부동산 시장도 거품이 빠질 만큼 빠져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서울 강남의 고가 주택을 기준으로 거품을 30%로 봤는데 이미 다 빠졌다는 주장이다. 주식시장도 바닥이라는 목소리가 없는 게 아니다.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난 돈을 풀어놨기 때문에 앞으로는 유동성 장세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가장 적은 블랙스완(검은 백조) 구간은 시장에서 자주 나타난다. 블랙스완 구간이란 종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 양쪽 끝부분인 ±5%, ±3% 안에 들어갈 매우 드문 확률을 말한다. 이런 블랙스완 구간을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대중의 탐욕과 공포심리로 인한 쏠림 현상 때문이다.

대중들은 2차 충격에 더 민감하고 더 크게 놀란다. 1차 충격에는 어이없어 하며 관망하다 2차 충격에는 공포감에 휩싸여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따라서 작금의 자산시장이 이런 블랙스완 구간이나 2차 충격 구간에 와 있는 것은 아닌지 두루 살펴봐야 한다. 조그마한 2차 충격만으로도 반 토막이 아니라 상상조차 힘든 10분의 1토막까지 갈 수 있다.

때마침 우리 정부가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처음으로 소집(20일)하고, 경제 비상시국과 관련한 청와대 끝장토론(21일)을 했다. 이런 회의에서 국민은 ‘정부가 경제를 점검해보니 우리의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시장이 믿을 만한 마지노선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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