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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고모' 김경희, 우동측 비밀문서 보고…

중앙일보 2012.07.21 01:32 종합 18면 지면보기
지난 5월 평양 만경대유희장을 방문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직접 잡초를 뽑고 있다. 북한 체제에서 절대 권력자가 허리를 숙여 풀을 뽑는다는 건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서 김정은의 이런 행동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격한 어조로 간부들의 관리 부실을 질타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끊임없이 알람이 울렸지만 이영호(70)를 비롯한 신(新)군부는 급부상한 권력에 취해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리고 휴일인 지난 15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숙청당하며 몰락했다. 22개월 동안의 화려한 정치군인으로서의 삶도 마감됐다. 북한 군부의 최고실세로 꼽혔던 이영호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지난해 12월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의 선두에 설 만큼 떠오르는 권력이었다는 점에서다. 정승조 합참의장도 20일 이영호 실각에 대해 “권력 갈등에 의해 제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7개월 동안 이영호와 북한 권력 핵심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뉴스 속으로] 7·15 군부 숙청 … 평양에선 무슨 일이



최근 전격적으로 제거된 이영호 전 총참모장.
 한 주간 사태 파악과 분석작업을 벌여온 대북 정보 관계자들은 이영호 숙청 사태의 뇌관은 우동측(70)이었다는 데 입을 모은다. 우동측은 김정은(28)이 후계자로 부상한 2009년 9월 북한 최고의 정보·공안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을 맡으며 권력 전면에 등장했다. 부장을 공석(일각에서는 김정일이 직할했다고 판단)으로 놔뒀으니 사실상 최고책임자였다. 김정일 시신 운구 때는 김정은을 비롯한 8명에 포함돼 핵심 실세임을 드러냈다. 그런데 지난 4월 권력무대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정보 관계자는 “보위부 최고실세 우동측이 관리하던 비밀파일을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66) 당 비서가 보고 놀랐다는 첩보가 올 초 있었다”고 귀띔했다. 짧은 시간 동안 우동측과 이영호 등이 자기 사람을 군은 물론 노동당과 각급 기관 곳곳에 심어놓은 사실을 김정은 후견그룹이 간파하고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얘기다. 김정은의 동의를 얻어 이영호에 대한 치밀한 내사를 벌였고 비리 명목으로 정치적 숙청을 가했다는 게 당국의 잠정 결론이다.



 우동측은 이미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와 장성택(66) 국방위 부위원장 부부에게 찍혀 있었다고 한다. 김정일 장례식장에서 장성택을 비판하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한 게 화근이었다. 장성택이 시신 참배 때 대장 군복 차림으로 처음 등장하자 “쟤는 뭔데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느냐”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장성택에게 보고됐고 손봐 줄 대상에 올랐다는 얘기다. 결국 후계구축에서 반대세력 색출에 앞장섰던 유경 보위부 부부장이 지난해 1월 간첩죄로 공개처형당한 지 1년6개월 만에 우동측도 축출됐다. 한 관계자는 “비공개 정치국 회의에서는 이영호는 물론 우동측 등 추종세력을 반당분자로 몰아세우는 격렬한 비판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소집과 해임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건 사실이지만 이영호의 거세를 예고하는 전조가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정은이 남긴 말과 노동신문의 행간을 복기하면 그런 전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영호를 위시한 군부세력을 겨냥해 던진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들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서 “신발창이 닳도록 뛰고 또 뛰는 것을 체질화해야 한다”며 군 지휘관들에게 혁신을 촉구했다. 같은 달 6일 노동당 간부들과의 담화에서는 “내각이 나라 경제를 책임진 경제사령부”라며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는 내각의 통일적 지휘에 따라 풀어가라”고 내각에 힘을 실어준다. 정부 당국자는 “군벌이 장악한 달러 돈줄을 내각과 노동당에 돌려 군부 힘빼기를 하려는 게 김정은과 그 후견세력의 뜻”이라고 풀이했다.





 지난달 2일 노동신문은 정론에서 “지금은 밖에서 밀려오는 적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회주의 요람 속에서 성장한 일꾼(간부를 지칭)의 관료화·귀족화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이영호 제거를 위해 장성택·김경희 부부와 당 관료 출신인 최용해(62) 총정치국장 등 후견그룹 트로이카가 치밀한 각본을 짜 시행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이영호 그룹을 몰아붙이기 위한 명분 쌓기용 선전·선동 메시지가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에 여러 차례 반복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영호로서는 장성택을 견제 내지 사전 제거하지 못한 걸 땅을 치고 후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정보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안착한 이후 제거될 운명이란 걸 감지했다면 먼저 움직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군부가 대남도발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로 상황이 악화된 가운데 추가 무력행동은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향배다. 북한은 15일 회의 개최와 16일 이영호 해임 발표에 이어 이튿날에는 김정은 원수(元帥) 칭호 부여 등의 수순을 선보였다. 표면적으로는 원만하게 반대파 제거와 권력기반 다지기를 동시에 진행한 것이란 평가다. 일단 군부 그룹에 의해 영향 받았을 수 있는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경제발전·개방 구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권력 전면에서 망신을 당하고 물러난 군부 세력이 문제다. 김영춘((76) 전 총참모장과 김일철(82) 전 인민무력부장 등 김정일 시대에 잘나가던 군부 인사들은 불만을 가질 게 분명하다. 장성택과 앙숙인 오극렬(81) 국방위 부위원장도 관심이다. 오극렬은 자신의 권력기반인 외화벌이 업체 청송그룹을 2009년 신군부의 핵심인 김영철(66) 정찰총국장에게 강탈당하다시피 넘겨줘야 했다. 김정은이 군부의 돈줄을 죄고 달러벌이 업체를 당과 내각에 넘기려 하고 있어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장성택이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 같은 오극렬을 완전히 축출할 결심을 굳힌다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한 권력 암투가 격화될 경우 소장파 군부인사들이 돌출행동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영호 축출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미확인 보도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당장 북한에 긴박한 사태나 무력충돌이 벌어진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당국자들의 말이다. 총격이 오갈 정도라면 우리 대북감시망이 파악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 군 사정에 밝은 정보 관계자는 “북한군 총참모장이 우리의 합참의장과 유사한 직책인 건 맞지만 인민무력부 2호동 집무실 등에는 총정치국과 보위사 등의 엄중한 감시망이 뻗어 있다”며 “소장(우리의 준장으로 별 하나)급 비서실장과 상좌(중령과 대령 사이 계급)급 수행비서가 배치돼 있을 뿐이어서 숙청에 저항해 유혈사태를 빚었다는 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교적 통제된 상태에서 군부 최고실세의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군부 장악에 대한 김정은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정은은 20일 총참모장 이영호의 후임에 현영철(61) 전 8군단장을 임명했다. 정 합참의장은 현영철 총참모장에 대해 “그가 대장 계급을 달고 후방 군단장을 맡았던 것으로 미뤄 권력의 핵심부와 나름 굉장한 연이 닿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접촉 경험이 풍부한 현영철을 권력 5위 수준의 핵심 권력에 앉혔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향후 중국의 지지 확보와 우호협력 증진에 활용하려는 것이란 진단이다. 군 관계자는 “통상 상장(우리 중장으로 별 셋)급이 맡는 군단을 대장인 현영철이 맡아 왔다는 건 북·중 국경지역을 담당하는 8군단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내친 김에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를 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자신이 신임하는 60대 장성 그룹의 발탁이 핵심이다. 2년 전 김정은 후계 추대 때는 김일철 전 인민무력부장을 ‘고령’을 이유로 퇴진시킨 전례가 있다. 노동당과 내각에는 젊은 전문관료로 채워 경제부문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동시에 김정은이 체제 위해 요소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경찰)를 앞세운 대대적인 사정을 벌일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3년상을 치른 1997년 ‘심화조’란 태스크포스를 가동해 4년에 걸쳐 노동당 농업비서 서관희 등 2000여 명을 숙청해 권력기반을 다졌다.



 김정일 시대와 다른 모습도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은 미키마우스가 등장하고 미국 영화 ‘록키’의 주제가가 연주되는 공연을 지난 6일 관람했다. 관영TV를 통해 그 소식과 공연 내용을 주민들에게도 선보였다. 최근 북한 관료들을 중국은 물론 서방 국가로 파견해 자본주의를 배우게 하고 현장을 체험토록 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김정은식 개혁·개방을 위한 채비로 분석한다.



 정부 당국은 북한 파워엘리트들의 권력 변화 양상을 주시하면서 김정은 체제가 선군(先軍)에서 민생을 중시하는 선경(先經)으로 정책 변화를 할 수 있게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 중인 것으로 파악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북한 개혁파에 힘을 실어주는 구체적 메시지를 담아 남북관계 경색을 푸는 쪽으로 정책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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