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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낮잠자고 일어났는데 아이가 싸늘하게…

중앙일보 2012.07.21 01:30 종합 19면 지면보기
17명의 아기들이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어린이박물관에서 원을 그리며 누워 있다. 이는 영유아돌연사 방지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AP=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A씨(29)는 7개월 된 딸을 재우고 막걸리를 약간 마셨다. 심란한 일이 있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이후 평소처럼 침대에서 딸과 함께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아기가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경찰 부검 결과 사인은 영유아돌연사증후군(SIDS)이었다.

[채널 15 JTBC 스페셜] 부모 품에서 돌연사하는 아기들



 결혼한 지 10년 된 B씨(42)는 지난해 말 첫아이를 얻었다. 임신이 되지 않아 한약 복용과 민간요법 등 별별 방법을 다 쓰다가 시험관 시술을 통해 낳은 귀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올 초 B씨 부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침대에서 아기를 사이에 두고 부부가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이가 숨진 것이다. 역시 영유아돌연사증후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부모가 옆에서 자고 있는 아기 가슴 위에 손만 얹어도 호흡곤란을 겪을 수 있다.
 영유아돌연사증후군은 아기가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정확한 원인에 대해선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수면성 무호흡이 주된 원인이며 그중 상당수가 부모가 함께 자다가 무의식 중에 아이의 호흡을 방해해 벌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눈에 띄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의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공동으로 영유아돌연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 500명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대상자의 60%가 아기와 같은 침대나 이불에서 잠을 잤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서울대 의대 유성호 교수는 “영아와 함께 자는 비율이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20% 수준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라며 “영아를 함께 데리고 자는 한국의 취침 문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아기를 같은 침대나 이불에서 데리고 자는 것을 ‘베드 셰어링(Bed Sharing)’이라고 부른다. 예쁜 아기를 함께 데리고 자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매한가지지만 서양에선 베드 셰어링이 영유아돌연사의 주범으로 일찌감치 지목됐다. 미국에서 발표된 영유아돌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베드 셰어링을 할 경우 돌연사의 위험성이 무려 40배나 높아졌다. 소아과 전문의인 리 브리는 “아기와 스킨십을 늘린다는 이유로 함께 자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에서 아기에게 별도의 침대를 마련해주는 게 보편화된 데는 이런 이유도 적잖이 작용했다.



 특히 돌연사 문제를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부모가 반대를 하더라도 철저하게 시신 부검을 실시한다. LA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백 그레고리는 “돌연사로 인한 사망일 경우 부검을 해서 정확한 사망원인을 가려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베드 셰어링이 이처럼 위험한 이유는 유아들의 신체 구조와 관계가 있다. 성인의 경우 호흡을 할 때 가슴뼈 안에 있는 횡경막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생기는 기압차로 폐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공기가 교환된다. 그런데 영아들은 성인과 달리 가슴뼈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호흡이 이뤄진다. 성인이 영아의 가슴 위에 손만 살짝 얹어도 호흡에 상당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로 인해 숨이 막히고 고통이 찾아와도 아기들은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가 아무런 이상징후를 느끼지 못하고 자는 사이에 숨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아의 가슴 위에 2㎏ 정도의 압박이 가해지면 성인에게 쌀 한 가마니(80㎏)를 올려놓은 셈”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위험을 가중시키는 또다른 요소로 부모의 음주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유아돌연사가 발생할 당시 부모가 술을 마시고 아이와 함께 잔 비율이 17%로 나타났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권태찬 대한영유아청소년돌연사학회장은 “한 국제 영유아돌연사학회에서 뉴질랜드 마우이족이 음주 후 아기와 함께 잠을 잔 비율이 10% 정도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참석자들이 일제히 그 수치에 경악할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베드 셰어링과 함께 영유아돌연사를 유발하는 요인으로는 아기를 엎드려 재우는 습관이 지적된다. 아기의 뒤통수를 예쁘게 만든다는 이유 등으로 엎드려 재우기가 한때 유행했는데, 이 역시 유아의 호흡곤란을 일으켜 돌연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엎어 재우기’를 두고 법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9년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생후 5개월 된 여아가 엎드려 자다 숨진 사건을 두고 부모와 어린이집이 법정에서 공방을 벌였는데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1·2심 재판부 모두 영아를 엎어 재우면 눕혀 재울 때보다 돌연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했다. 엎어 재우기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선 ‘눕혀 재우기 운동(Back to Sleep)’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실제로 이 운동이 전개된 이후 영유아돌연사가 크게 줄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이 밖에 아기 잠자리 주변에 호흡을 방해할 수 있는 인형 등을 두는 것도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대한영유아청소년돌연사학회는 영유아 돌연사를 예방하기 위해 ▶아이를 바로 눕혀서 재울 것 ▶부모와 침대·요·이불을 따로 사용할 것 ▶잠자리에서 부모와 아이의 거리는 최소한 한 팔 간격(50㎝) 이상을 유지할 것 ▶음주나 졸리는 약을 복용한 뒤에는 절대로 아이 옆에서 잠들지 말 것 등을 권고한다. 이불이 올라가 유아의 얼굴을 덮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의 양쪽 겨드랑이에 이불을 끼워주고 아기가 자는 주변에는 푹신한 장난감 등을 두지 말라는 점도 강조한다.



이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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